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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주 명창 후계자만 동시에 2명? 이례적 선정에 술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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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이일주

이일주

조선 후기 8대 명창인 ‘이날치’의 후손인 이일주(85·여) 명창의 뒤를 이을 공식 후계자가 이례적으로 2명이 나왔다. 최근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이 명창의 제자 2명이 나란히 심사를 통과해서다. 이날치는 ‘수궁가’를 재해석한 노래 ‘범 내려온다’를 히트시킨 밴드(2019년 데뷔) 이름이기도 하다.

심청가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송재영, 40년 수련한 전수교육조교 #장문희, 젊지만 이날치 마지막 후손 #전통 중시하는 국악계서 드문 사례 #“판소리 보전에 중점둔 제도 개편을”

전북도는 “지난 2일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송재영(61)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과 장문희(45·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을 지정(인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바디는 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에게 전수받아 다듬은 판소리 한 마당 전부를 말한다. 전북도는 한 달간 예고 기간을 거쳐 다음 달 7일 지정 고시를 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악계에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국악계 정서상 한 문파에서 후계자 2명이 나온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도는 어떤 기준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지정했을까.

송재영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송재영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전북도는 이일주 명창의 건강이 악화하자 그를 명예보유자로 전환한 뒤인 지난해 3월 10일 도 무형문화재 지정 계획을 알렸다. 이후 현지조사와 도 무형문화재 소위원회 평가 등을 거쳐 1년여 만에 두 명창을 낙점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일주 명창의 경우 후계자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제자 3명이 문화재를 신청해 이 중 기준 점수를 넘긴 2명이 대상자가 됐다”고 말했다. 전북도 측은 “도 무형문화재 지정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조례를 근거로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다만 “남원 옻칠장 등 시간 차를 두고 도 무형문화재로 여러 명이 지정된 경우는 있었지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지정된 경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장문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

장문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

도 무형문화재 1단계 심사에서는 전승 활동 실적, 전승 기량, 대상자 평판, 건강 상태, 전승 기여도, 2단계 심사에서는 실기 능력, 교수 능력, 시설·장비 수준, 전승 의지 등을 평가한다. 두 명창 모두 실력이 출중해 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지정 예고 심의에서 격론이 벌어졌다는 게 전북도 설명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송 명창은 이일주 선생님을 40년 가까이 모시면서 전수 교육 조교로서 10년가량 활동한 경력이 강점이고, 장 명창은 나이는 어리지만 판소리 실력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데다 이날치 선생의 마지막 자손이라는 점이 반영됐다”고 했다.

두 명창은 문화재 복수 지정을 두고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스승의 소리를 잘 보전하겠다”고 했다. 송 명창은 “같은 제자지만, (장)문희 나름대로 소리 보전 계획이 있을 것”이라며 “저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세상에 많이 보급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일주 명창의 조카인 장 명창은 “송 선생님은 연륜과 지위가 있으시고, 저와 이모님 밑에서 가장 오래 있어서 (복수 지정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저 나름대로 이모님에게 받은 소리를 묵묵히 전승하겠다”고 했다. 이날치는 장 명창의 고조 외할아버지다.

최동현 군산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무형문화재 지정 목적이 판소리 보전이라면 명창 한 사람이 여러 소리, 아니면 한 소리의 보유자로 여러 명을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 볼 때”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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