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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터 막대기, 고분 속 미라…문화재 분석 CSI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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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에 개관한 문화재분석정보센터는 문화재 분석의 전 과정을 원스톱 관리하게 된다. 고DNA분석실에서 연구원들이 인골 조사를 하는 모습.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최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에 개관한 문화재분석정보센터는 문화재 분석의 전 과정을 원스톱 관리하게 된다. 고DNA분석실에서 연구원들이 인골 조사를 하는 모습.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 발굴 현장에선 기와 파편, 나뭇조각까지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2003년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26~30cm 길이 나무막대 6점이 그랬다. 애초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조사팀은 이곳을 곡물창고로 여겼고 막대를 측정용 자(尺)로 생각했다. 이듬해 토양 분석 결과 다량의 기생충 알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백제인의 화장실이었음이 밝혀졌다. 막대의 용도는 볼일 본 뒤 뒤처리하는 도구로 추정됐다. 고고학적 막대기와 토양 및 생물학 분석이 만나 국내 첫 고대 화장실 유적이 확인된 사례다.

대전 문화재분석정보센터 개관 #23억짜리 연대측정장비 갖춰 #시료분석, 미·일 의존 벗어나 ‘독립’

“사람·동물의 뼈, 직물 조각, 음식물 찌꺼기도 모두 옛사람의 삶과 문화를 엿보게 하는 자료다. 이번 센터 개설로 이런 시료들을 모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정확한 연대측정을 할 기반이 마련됐다.”

지난 1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에 공식 개관한 문화재분석정보센터(이하 센터) 신지영 학예연구관의 설명. 추진 8년 만에 개관한 센터는 국내 문화재 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문화재 시료의 전처리, 분석과 보관, DB 구축까지 연대측정의 모든 주기를 ‘원스톱’으로 관리한다. 문화재 분석의 과학수사대(CSI) 같은 역할이다. 190억원을 들인 건물(지하 1층~지상 5층)엔 연대측정 실험실, 질량분석실, 분석 시료 보관실 등을 갖췄다. 오는 8월엔 문화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용 가속질량분석기(AMS)가 들어온다. 장비 한 대 값이 23억원, 문화재청 보유 설비 중 최고가의 최첨단 장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0개국 중 유일하게 문화재 분야 AMS를 갖춘 국가기관이 없다는 오명도 벗게 됐다.

“고고학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건 ‘우리가 파낸 게 언제 것이냐’, 즉 연대측정이다. 이전까진  미국·일본 민간회사에 시료를 보냈었다. 이제 문화재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신 연구관)

특히 인골 등 각종 뼈의 탄소 동위원소 분석이 정밀해져 연대 측정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흥수 아이’ 같은 혼란을 덜 수 있다. 흥수 아이는 1982년 충북 청원군 가덕면에서 발굴된 ‘한국 최고(最古)의 구석기인 화석’. 교과서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유골이지만 발굴 당시 보존처리 과정의 오염으로 현재는 4만년 전 화석이란 데 의문이 제기된 상황이다. 신 연구관은 “향후 뼈나 목곽묘가 출토되면 센터가 수습, 정제, 분석하는 과정을 주도해 더 온전한 상태로 시료를 보관·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뼈나 치아 분석은 식습관 및 식재료 분석에도 중요하다. 2010년 발굴된 우리나라 최대 신석기 무덤인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에선 48명의 사람뼈가 나왔는데 이 중 10명 뼈의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주로 해양성 포유류와 어패류를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골·미라 등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법)에 명시된 문화재가 아니라서 그간 처리·보존에 소극적이었고 관련 DB 구축도 전무하다. 최근 문화재청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총 96건 124점)’의 경우 복식만 벗겨낸 두 미라가 발굴 11년째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에 방치돼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이전에 살아서 ‘임진왜란 마님’들로 불리는 이 두 미라를 센터가 인수·관리하기엔 관련 시설·전문가는 물론 법적 근거도 없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실이 이런 문화재 이외 학술적 중요자료(중요출토자료) 처리와 관련된 법률개정안을 상반기 발의 목표로 추진 중이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 측은 내년 중 광발광연대측정기를 들여오고 운용 인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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