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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방미 길 ‘스가 그림자’ 백신 외교 부담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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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15~18일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 뒤 미·일 동맹 강화와 백신 추가 확보 등의 성과를 달성하며 5월 하순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발걸음이 더 무거워지게 됐다.

일본, 화이자 백신 추가확보 발표 #그 뒤엔 바이든 ‘암묵적 지지’ 작용 #한국, 미국에 줄만한 카드 마땅찮아 #문 대통령 “미국과 백신 긴밀히 공조”

일본 정부는 스가 총리가 미국 방문 중인 지난 17일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추가로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분량과 도입 시기는 발표하지 않았다. 백신 접종 업무를 관장하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은 다음 날 “9월 말까지는 일본 내 모든 접종 대상자에게 맞힐 수 있는 수량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선 ‘9월까지 전 국민 화이자 백신 확보’ 카드가 9월 조기 총선을 위한 실적 쌓기용이지, 백신 물량을 확실히 확보한 건 아니라는 비판도 있지만, 스가 총리로서는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백신 수급 우려에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백신 협력을 약속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미국 정부가 화이자·모더나 등 민간 기업을 무작정 압박할 순 없지만, 일본 사례를 보면 협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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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1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멈춰 있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경제 협력, 코로나19 대응, 백신 협력 등 양국 간 현안의 긴밀한 공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스가 총리는 지난 16일 미·일 정상회담 일정에 집중했고, 다음 날 화이자 CEO와 통화했다. 전날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암묵적 지지를 얻은 뒤 화이자와 접촉했기 때문에 백신 확보가 수월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화이자 CEO와 대면 만남도 아니고 통화만 하는 것이라면 도쿄에서도 가능한데, 굳이 워싱턴에 가서 통화하고 백신 문제를 마무리한 것이 이런 예측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각국의 백신 요청에 “미국 내 접종이 우선”이라며 선을 그어왔음에도 스가 총리는 백신 추가 확보라는 성과를 냈다.

청와대는 “행정적·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지난 16일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는 입장이지만, 관건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한국이 얼마나 호응해 주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스가 총리가 방미 중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협의체) 문제 등에 협력할 여지를 보인다면 백신 문제 등에서 성과를 얻을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원론적 수준 이상의 공감대를 마련하려면 주고받기가 가능해야 하는데, 미국이 중시하는 중국 압박 기조에 한국이 얼마나 호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전폭적으로 호응하는 일본과, 반응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공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정진우·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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