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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중앙일보

입력

피지.나우루.통가 등 남태평양 섬나라 원주민들은 원래 날씬한 체격이었다. 생선과 과일을 주식으로 했다. 지금 이 섬나라들은 세계 최악의 '뚱보 국가'가 됐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당뇨.암 등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 등에 노출되면서 비만이 급증한 것이다. 사냥과 생식을 즐기던 알래스카 인디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지구상에서 제일 무서운 전염병은 비만"이라고 경고했다.

냉전시대에 소련과 중국이 가장 두려워한 무기는 미국의 핵폭탄이 아니었다. 곡식 이삭을 까맣게 말려 버리는 흑수병균이라는 세균 무기였다. 미국은 중국 평야의 벼이삭과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밀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흑수병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핵폭탄은 그래도 국지적 피해로 한정되지만 먹거리가 사라지면 나라 자체가 소멸된다.

먹거리야말로 삶의 기본이다. 먹거리가 변하면 체질이 달라지고 사회가 바뀐다. 유해식품은 공공의 적이다. 음식으로 장난치면 살아남지 못하게 해야 한다.

홋카이도 농민들이 만든 유키지루시(雪印)는 일본 유제품 시장의 80%를 장악한 거대 기업이었다. 2000년 이 회사 오사카 공장의 우유탱크 밸브에 황색포도상구균이 침입했다. 이로 인해 1만4000여 명이 식중독을 일으켰다. 이듬해에는 호주산 쇠고기를 국내산으로 포장만 바꿔 출시한 사실이 들통났다. 이 두 사건으로 한 해 매출액 10조원의 유키지루시는 거덜나고 말았다.

중국의 유해식품 처벌은 유별나다. 아예 사형이다. 2004년 유아 13명을 영양실조로 숨지게 한 가짜 분유 제조업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공업용 알코올로 가짜 술을 만들어 50명을 사상케 한 범인들도 총살형을 피하지 못했다. 중국의 '책임 추궁제'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해식품 관리감독을 맡은 공무원들까지 연좌제로 처벌하는 제도다. 가짜 분유 사건 때는 푸양(阜陽) 시장과 부시장 등 9명의 고위 공무원이 파면됐다.

최근 중국산은 물론이고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나왔다. '먹거리 안전 문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인류 전체의 문제다'. 1996년 로마 세계 식량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먹을 것 하나 마음 놓고 먹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모든 건강은 부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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