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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식품 검역 시스템부터 재정비하라

중앙일보

입력

최근 국내에서 양식된 송어와 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발암의심물질이 검출돼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김치에서 납 성분 검출에 이어 기생충 알이 발견돼 다시 한번 국민의 식품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라면의 우지 파동, 골뱅이 통조림의 포르말린 사건, 불량 만두 사건 등 식품위생이 문제됐던 사건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 순간만 지나가면 모두 잊어버리고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곤 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모든 식품이 한 번쯤 파동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왜 이런 식품 위해 사건이 계속되는 것이며 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말라카이트 그린과 중국산 김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양식된 송어.향어가 어떻게 말라카이트 그린에 오염됐으며, 왜 중국에서 수입된 김치에 납 성분이나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지를 차분히 분석하면 그 답이 나올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발암의심물질로 수년 전 판정이 난 말라카이트 그린을 어디에도 사용해선 안 될 물질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최근까지 물곰팡이병의 치료나 예방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사용지침서까지 만들어 권장했다. 생산성 향상에만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부서와 농.축.수산물의 식품으로서의 위해성에 중점을 둔 부서 간 커다란 시각차이다. 우리나라처럼 무려 8개 부처에 식품위생 행정이 다원화된 나라도 드물다. 설사 다원화돼 있더라도 각 부처를 통괄하는 부서가 없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식품위생 행정의 일원화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캐나다는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식품위생 행정 조직체계와 인력을 모두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명실상부한 일원화로서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결론적으론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세기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부서를 한 군데로 모으기는 했으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각 부서가 한 지붕 아래로 모여서인지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경우다. 일본은 후생성과 노동성을 하나로 통합할 정도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으나, 2003년 7월 내각부 산하에 식품안전위원회를 만들어 일원화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종전처럼 식품제조 인.허가 등의 식품위생 관리는 각 부처에 그대로 맡기지만, 어떤 품목이나 물질에 대한 위해성 평가와 그 정보의 공개는 식품안전위원회가 맡아서 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 수 있으며 무엇은 먹으면 안 된다' '무엇은 얼마까지의 오염을 허용할 수 있다' 등 가장 핵심적인 사항을 식품안전위원회가 정하고 그것을 각 부처에 시달한다. 이와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말라카이트 그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 보더라도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농.축산물, 한약재, 그리고 식품의 위생 상태가 전반적으로 문제점 투성이다. 실제로 중국엔 아직까지 인분으로 배추를 재배하는 곳이 많이 있으며, 악성가축전염병이나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국으로 선진국들이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중국과 인적.물적 교류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시에 확대해 나간 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외래성 식품 위해 요인을 막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수입 검역 시스템을 재정비.강화하고, 우리 식탁에서 중요한 식품 순서로 위생 검사 항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식품별로 위해식품중점관리제(HACCP)를 확대하고, 각국에서 HACCP 인증 식품회사의 식품만 수입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납이나 기생충 알로 오염된 김치가 수입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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