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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먹거리 비상] 표고버섯 냄새 맡고 "합격"

중앙일보

입력

25일 오후 인천세관 보세장치장. 식품의약품안전청 소속 검사관이 중국에서 수입된 말린 표고버섯 상자 800여 개 중 하나를 뜯었다. 그는 버섯을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아본 뒤 합격 판정을 내렸다.

인근 냉장창고에 가봤다. 이곳에서도 중국산 깐 도라지 상자 310개 중 하나를 뜯어 버섯과 같은 방법으로 검사했다. 이 검사관은 "주부들이 시장에서 고사리나 도라지가 상했는지 살펴보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인근의 Y수산물 보세창고.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인천지원의 검사관 2명이 오전에 중국 다롄(大連)에서 들어온 1t가량의 산 낙지(약 220만원어치)에 다가갔다. 검사관은 낙지가 폐사하거나 부패한 게 없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이어 낙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는 "이거 단단한 게 활력도가 좋구먼…"이라고 말하며 합격 판정을 내렸다. 낙지에 중금속이나 방부제 등의 유해물질이 들어있는지는 검사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중국산 먹거리에 비상 경보가 울리는 이유는 이처럼 국내 검역 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중국 내 영세 양식업자들이 발암 의심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 등 화학물질을 마구 쓰고 있지만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있다.

◆ 양식업자의 빈번한 유해물질 사용=중국의 수산물 양식업체는 1000만여 곳으로 추산된다. 이 중 80% 이상이 종업원 1~5명의 영세업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들 양식장의 위생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베이징(北京) 근교엔 장어와 쏘가리.초어 등을 양식하는 소규모 양식장 수백 곳이 있다. 이곳에선 고기들이 서로 부닥쳐 피부에 생기는 상처를 없애기 위해 말라카이트 그린이나 클로로마이세틴 같은 화학물질을 예사로 사용하고 있다. 광둥(廣東)성의 한 양식업자는 중국의 지방 TV에 나와 "양식어 피부를 보호하고 선명한 색깔 유지를 위해 10여 가지 약품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털어놨다.

사료도 문제다. 홍콩의 빈과일보는 최근 "중국산 민물고기에 항생제가 든 사료를 먹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단속 손길도 느슨하다. 중국은 3년 전 말라카이트 그린 사용을 금지했지만 지난 7월 허난(河南).허베이(河北)성의 양식장에서 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적발했을 뿐이다.

◆ 허술한 국내 검역체계=지난해 수입된 농수산물의 2~5%가 무작위 검사를, 10~18%가 정밀 검사를 받았다. 농산물의 65%는 서류 검사만 받는다. 수산물의 85%는 서류검사 또는 눈.코 등 감각에 의존한 검사만 받는다.

1998년 이후 수입량은 2~3배 늘었지만 검사인력은 약 30%밖에 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적정량의 두 배를 맡고 있어 검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의 한 검사관은 "수입량이 급증해 서류 검사도 벅차 정밀 검사를 확대할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식의약청 유성현 수입식품과장은 "제대로 검사하려면 인력이 지금보다 두 배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해식품에 대한 정보가 어두워 사전 수입예방 조치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전은숙 식약관은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현장 방문 등이 불가능해 중국 내 식품 안전 관련 규정들이 어느 정도 지켜지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영세 수입업자와 밀수도 문제=본지 확인 결과 인천항으로 수산물을 들여오는 수입업체 대부분이 영세업체였다. 해양수산부 수산물품질검사원의 최성복 인천지원장은 "수입업체들이 자본금 2000만~3000만원에 지나지 않는 '보따리상' 수준이기 때문에 철저한 위생 관리를 주문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보따리상들이 들여오는 중국산 농산물도 한 달에 240~300t에 달한다. 인천세관 휴대품 검사관실 김종운 계장은 "보따리상의 제품은 육안으로 검사하고 있으며, 중금속 함유 등 인체 유해 여부를 조사하기에는 인력이나 장비가 태부족"이라고 말했다.

밀수 식품의 위생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92건 687억원어치의 농수산물 밀수품이 적발됐다. 밀수품이다 보니 유해물질 함유 여부 조사를 받지 않은 것들이다. 전남이나 제주도 서.남해 해상에서 우리 어선이 중국 어선에서 생선을 넘겨받아 시중에 유통하는 사례도 많다.

◆ 특별취재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신성식.김정수.김준술.김호정 기자

홍콩= 최형규, 도쿄 =예영준 특파원, 인천= 정영진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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