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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쓴 양반들의 性 담론 ⑦] 부모의 아이들 ‘눈치섹스’

중앙일보

입력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선의 갓 쓴 양반들에게도 아이들은 부부의 성생활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던 것 같다. 특히 부모와 자녀가 한방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성생활이 귀찮아서 혹은 어려운 가정형편상 더 이상의 출산은 막아야 하는 적극적 입장이 되기도 한다. 좀처럼 억누르기 힘든 성 충동을 사이에 놓고 부모와 자식이 벌이는 묘한 신경전을 들여다보자.

“저는요, 30대 초반의 주부인데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하나가 있어요. 평소 남편은 회사 일에 지쳐 사실 그게 잘 안 되죠. 어쩌다 남편이 싱싱한 몸으로 귀가하면 자연히 가슴이 부풀어요. 그런데 막 그 일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아이가 침대로 뛰어들어요.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분명히 조금 전까지 제 방에서 쌔근쌔근 깊이 잠든 것을 확인했는데 미워 죽겠어요.”(서울 강남의 모 아파트에 사는 K씨)

이 시대에 제법 만연한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하소연이다. 부부의 성을 상담하는 웹 사이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가정의 현대적 풍경이기도 하다.현대인은 대체로 도시의 고층 아파트에 산다. 가족은 대개 젊은 부부와 한두 명의 아이뿐인, 이를테면 핵가족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에게 따로 침실을 배당할 만큼 독립된 공간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부부생활은 방해받기 십상이다. 다른 방에서 자게 돼 있는 아이들이 훼방을 놓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조선시대에는 아흔아홉 칸 고대광실도 있었지만 세 칸에 불과한 초가집이 실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그 비좁은 세 칸 집에서 3대가 함께 살기도 했다. 당시에는 피임 수단도 전무하다시피 해서 아이가 생기면 다섯이든 열이든 모두 낳는 수밖에 없었다. 수입이래야 뻔한데, 식구 수만 많다 보니 살림살이는 더욱 쪼들리고 생활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부귀다남(富貴多男)’은 조상 전래의 미덕 가운데 으뜸이었다. 부자가 되고 출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 많이 두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했다. 현대인으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경구다. 갓 쓴 양반들은 아이들이 성생활을 방해한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양반들은 과연 무조건 많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믿었을까. 아이들은 은연중 부모의 성생활을 감시하면서 자연히 성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청소년의 성교육에 대해 갓 쓴 양반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아이는 부부생활의 훼방꾼?

어느 겨울날이었다. 마침 아이가 발치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부부는 그 일을 벌이기로 했다. 방사가 무르익자 두 사람의 쾌락은 절정에 달했다. 몸을 펴고 오므리고 당기다 밀었다. 그러다 보니 이불이 도르르 말렸고 아이는 이불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부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기쁨에 젖은 채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아직 단꿈에 젖어 있는 아버지에게 아이가 불쑥 물었다

“밤새 이불 속에서 진흙 밟는 소리가 났어요. 그게 무슨 소리였죠?”
“어, 그건 말이야. 진흙새소리(泥鳥聲)였나 봐.”
“그런데 그 새는 주로 어느 때 울어요?”
“따로 정해진 때가 없는 모양이던데…. 왜 그러니?”
“간밤에 그 새가 우는 바람에 추워 죽는 줄 알았어요.”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를 껴안았다.

조선시대에도 젊은 부모들은 어린아이 눈치 보느라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젖먹이 아이는 어머니가 안방에서 안아 길렀다. 만일 3대가 한집에 살 경우에는 일곱에서 여덟 살쯤 된 아이는 조부모 방으로 옮겨졌다. 집에 방이 많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방을 차지하고 손자·손녀를 나누어 맡았다.

그러나 당시 평균수명이 워낙 짧아 조부모 가운데 한 분은 작고하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3대가 한집에 함께 거주하는 경우도 우리가 짐작하는 만큼 많지 않았다. 사회 관습상 큰아들 내외가 노부모님을 모시게 돼 있어 둘째아들 이하는 주로 핵가족을 이뤘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신분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가정은 부모 둘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살았던 것이다. 갓 쓴 양반들 역시 대체로 그런 형편이었다.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부부의 고초는 바로 그들 양반의 일상적 문제였다. 아이가 교성을 ‘진흙새소리’로 곧이듣는 때는 그래도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런 귀여운 아이도 곧 무럭무럭 자란다는 데 부모의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다.

어느 부부가 한낮의 무료함을 참지 못했다. 갑자기 그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예닐곱 살 된 아들·딸이 곁에 붙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아버지는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낼 작정을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대바구니를 주며 어서 냇가에 가서 송사리를 잡아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바구니를 가지고 냇가로 가려다 문득 부모를 의심했다. 자신들을 내쫓은 다음 몰래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이들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에 구멍을 뚫고 방 안을 유심히 살폈다. 방 안에서는 부부가 일을 치르느라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 맛이 어때?”
남편이 물었다.
“꼭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요.”
부인이 대답했다.

“나는 정말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 같소.”
남편이 대꾸했다.

그렇게 한참 희롱하던 부부는 일을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때맞춰 아이들이 빈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왜 송사리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느냐”며 성을 냈다. 아이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하늘 위로 올라가고, 어머니는 땅속으로 들어가셨으니 송사리를 몽땅 잡아온들 누구랑 같이 먹는대요?”

아이들은 일곱 살쯤 되면 관찰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사물을 지각하고 나름대로 판단하는 힘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꾀어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그 틈에 부모가 재미있는 볼일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갓 쓴 양반들은 ‘미운 일곱 살짜리 아이를 둔 사람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낸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이미 철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방문을 덜컥 열고 들어올 만큼 무신경하지도 않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에 구멍을 뚫고 방안을 유심히 살필 정도로 지혜가 있는 꼬마 어른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버지는 하늘 위로 올라가고 어머니는 땅속으로 들어가셨으니 송사리를 잡아온들 누구하고 먹겠느냐”며 제법 당차게 따질 줄도 안다. 이런 무서운(?)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여, 그 일이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이부자리를 펴지 말라. 우리도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해 일을 벌였다가 아이들에게 걸려 대단히 혼난 적이 있었다. 갓 쓴 양반들이 젊은 부모들에게 들려주는 경고가 아닌가 한다.

양반들의 음성에는 조선시대 젠더(gender)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진하게 배 있다. 성적 쾌감이 극치에 달했을 때 여성은 왜 땅속으로 꺼질 듯한 느낌이 들고, 남성은 하늘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 되는가?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돼 있다.

이왕 말꼬리를 잡은 김에 한마디 더 붙여 보자. 송사리를 잡아오라며 아이들을 내보낸 사람도 아버지, 아이들을 꾸짖는 이도 아버지다. 성적 쾌감을 말로 표현해 보라고 먼저 요구한 이도 아버지다. 어머니는 똑같은 질문을 남편에게 던지지도 못한다. 이 집안에서 그녀는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집안 곳곳에는 아버지의 권력만 충만하다. 갓 쓴 양반들은 무의식중에 성적 편견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배우자인 아이들의 어머니를 젖혀두고 아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 꼴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권력자인 아버지와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람둥이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이웃의 부인들을 훔치고는 했는데 방법이 무척 특별했다. 아낙이 혼자 있는 방 장지문을 가만히 뚫은 뒤 그 구멍으로 양경(陽莖, 남성의 성기)을 들이밀었다. 이러면 아낙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구멍에 옥문(玉門, 여성의 성기)을 들이대고 마음껏 즐겼다

어느 날 그 남자는 그 생각이 간절한 나머지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공교롭게도 그 집 아낙은 외출 중이었다. 남편과 아이만 집에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른 채 남자는 늘 하던 버릇대로 문에 구멍을 낸 다음 주룡(朱龍, 남성의 성기)을 밀어넣었다. 방 안에서 이 광경을 본 아이가 제 아버지에게 말했다.

성적 쾌락을 위한 아내의 외도

“아버지 저걸 봐요. 저 물건이 저런 식으로 들어오면 어머니는 항상 저기에 엉덩이를 대고 마구 비벼대며 소리질렀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그 흉물을 칼로 자르겠다며 방 안에서 칼을 찾았다. 남자는 이거 큰일났구나 싶어 급히 꾀를 냈다. 그는 태연함을 가장해 중얼거렸다.

“칼로 베면 뿌리가 남으니 소용없지. 얼마 후에는 자라나 또 쓸 수 있다 이 말이야. 하지만 코를 풀어 거기에 발라 놓으면 뿌리까지 다 썩어 버리지. 다시는 물건을 못 쓰게 된다고.”

아이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 매우 그럴 듯하게 여겼다. 드디어 코를 팽 풀어 물건에 듬뿍 발랐다. 그 틈에 남자는 양경을 구멍에서 빼내고 즉시 줄행랑을 놓았다.

아이는 어머니의 외도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여태껏 고자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아버지와 아이는 집에 단둘이 남아 있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유난히 아이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 바람에 아이는 모처럼 아버지의 편이 되었다. 아이는 아버지가 부재중이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는 했는지를 고발했다. 어머니의 부정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들이여, 아내의 외도가 의심되거든 우선 아이의 마음을 얻어라. 대강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두어 가지 좀 더 해명돼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이웃집 남자가 창문에 구멍을 뚫고 성기를 들이밀었다고 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굳이 문제의 남성의 신원까지 시시콜콜 밝힐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남자와 아내의 외도는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는 점이 강조돼 있다. 상대방 남성의 익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갓 쓴 양반들은 창호지 바깥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남성을 만들어냈다.

둘째, 이웃집 남자는 임기응변에 매우 뛰어난 사람인 데 비해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보다 관찰력도 없고 판단력이 흐릿한 바보로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자기 아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지낸 사람이다. 아이보다 못한 바보로 희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간음에 성공한(?) 이웃집 남성이 얼마나 영악한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부모의 合房 막아야 했던 아이들

셋째, 나중에 아이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갓 쓴 양반들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마 각자 알아서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중에 그녀를 용서하기로 합의한 것 같다. 상대가 누구인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성적 충동 때문에 선을 넘어간 것인데다, 목격자도 어린아이 하나에 불과하다. 게다가 남편으로서는 상대편 남성에게 그 나름으로 최후의 경고를 이미 해둔 셈이다.

어느 부부가 특히 그 일에 부지런했던지, 젊은 나이에 이미 다섯 아들을 슬하에 거느렸다. 그럼에도 부부의 정은 조금도 줄어들 기색이 안 보였다. 이를 눈치챈 다섯 아들이 모여 서로 논의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께서 다섯 아들을 두시고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시는 모양으로 늘 잠자리 같이하기를 즐기시니 큰일이다. 만일 또 아이를 낳는다면 우리가 안고 업고 해서 길러야 할 테니 걱정이다. 젖먹이의 더러운 똥이며 오줌을 우리가 어찌 견딜까? 이제부터 우리가 당번을 정해 밤마다 각자 일경씩 돌아가며 방을 지켜 두 분이 서로 합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고역은 절로 면하게 될 것 아닌가?”

이렇게 상의하고 다섯 아들이 번갈아 부모의 잠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부부는 몹시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마지막 당번을 선 아이는 막내둥이였는데 어린 탓에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들었다. 부부는 그 틈을 놓칠 새라 그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꽤 조심스레 사랑을 주고받았으나 흥이 고조되자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었다. 그 바람에 막내가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마침 후배위를 하던 참이었다. 아이가 말했다“엄마, 아직 밤이 새지 않았어요. 아빠를 업고 어디를 가시는 거죠?”

부부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갓 쓴 양반들이 과연 다남(多男)을 부귀(富貴)와 마찬가지로 귀중하게 여겼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갓 쓴 양반들의 대답이다.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또 아이를 낳는다면 우리가 안고 업고 해서 길러야 할 테니 걱정이다. 젖먹이의 더러운 똥이며 오줌을 우리가 어찌 견딜까?”

다섯 아들은 이런 논지를 펴며 대견스럽게도(?) 부모의 잠자리를 방해하기로 결정하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면 부모들도 성행위를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의식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행위 자체를 즐겼다. 출산은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 그것도 부담스러운 결과에 불과했다. 만일 효과적 피임법이 개발돼 있었더라면 얼마든 환영했을 법하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性理學)에서 말하는 가문 계승의 중요성을 내세워 다들 아들을 얻고자 했다. 친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두기도 했다. 18세기의 족보 기록을 검토해 보면 전체 남성의 10% 정도가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아들 낳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낳기도 어려웠지만 무사히 길러내기가 더욱 어려웠다. 갖은 질병과 극심한 가난 때문이었다.

그래서 슬하에 아들이 많다는 것은 복된 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흥부전>에서 보듯 가난한 양반이 아들만 많으면 뭐 하겠는가? 더욱 괴로운 노릇이었다. 형제 간에 나눌 재산이 없고, 당장 먹을 식량도 없는 판국에 자식만 많다면 그 또한 일종의 형벌이었다.

누구도 다남, 즉 아들 많음을 노골적으로 비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남의 고통을 공감하는 가엾은 양반들도 있었다. 실제로 함경도 지방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는 영아살해가 보편적 관습으로 정착돼 있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먹여살릴 수 없는 자녀는 죽게 내버려두는 뼈아픈 일이 얼마든지 있었다. 이야기 속의 다섯 아들은 그런 비극을 잘 알고 있었다고 짐작된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의 합방(合房) 자체를 막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어느 마을에 한 남자가 초하룻날 아침나절 아내와 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어린아이가 곁에 있어 곤란하게 여겼다. 남편은 어린아이에게 말했다.“밖에 나가 새소리를 듣고 올해 농사를 점쳐 보아라.”

속담에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비둘기가 울면 콩이 잘되고, 까마귀가 울면 과실이 잘 열리며, 잡새가 울면 곡식이 풍성하다는 속담이 있었다. 수상하게 생각한 어린아이는 밖에서 창틈으로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았다. 방 안에서는 부부가 한창 뒤엉킨 가운데 운우의 극치가 바야흐로 무르익어 갔다. 아이가 들여다보니 엄마가 흐느끼는 듯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부부는 일을 마쳤다. 때맞춰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점잔을 피우며 밖에서 무슨 새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대답했다.

“새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 올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무슨 까닭인지 물었다.

“아기집이 큰 소리를 내어 갑자기 울었으니 당연히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 말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다.

매우 그럴 법한 이야기다.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자녀의 눈을 피해 회포를 풀고자 하는 부모와 어려서부터 신경전을 펴온 아이들이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부모가 몰래 즐기는 성행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것을 하는 소리든, 하는 광경이든 듣고 볼 날이 온다. 제아무리 부모가 조심한다고 해도 아이는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알 것은 다 알게 되고야 만다.

절로 되는 성교육

“아기집이 큰 소리를 내어 갑자기 울었다”는 어린아이의 말이 주목된다. 바깥으로 내몰린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긴 행위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한 것 아닌가? 아이에게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는 목격한다. 그리고 이해한다.

어느 선비 집에 종이 있었는데 그 종의 아내가 매우 예뻤다. 선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몰래 종의 아내 방에 들어가 관계를 맺었다. 그러다 종의 아내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 선비는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했지만 열 살쯤 된 조카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하루는 조카가 선비에게 희한한 질문을 던졌다.

“삼촌은 여자를 탐하는 욕망과 좋은 음식을 탐하는 마음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절실하다고 보시는지요?”

삼촌은 어린아이가 벌써 그런 데 마음을 두는 것이 큰 문제라며 꾸짖었다. 아이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얼른 답을 달라며 졸라댔다. 삼촌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색욕과 식욕 가운데 무엇이 중한가는 뻔하지. 사람은 우선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으니 식욕이 더 중요하지. 안 그렇겠느냐?”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삼촌께서 하시는 일을 보니 분명히 그런 것이 아니더군요. 집안일을 하는 종은 더럽다 하면서도 종의 아내는 무척 사랑하시더군요. 낮에도 함께 자면서 몸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막 그러던데요? 아마 삼촌께서는 종이 남긴 밥을 먹으라고 했다면 더러운 종이 남긴 밥을 어떻게 먹느냐면서 화를 냈을 것이 틀림없어요. 그런데도 종의 아내는 껴안고 좋아하다니요. 식욕보다 색욕이 더 큰 것이 틀림없다고요.”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몰래 내가 하는 일을 다 구경했구나. 어린아이가 그런 것을 알면 못 쓴다. 이 못된 녀석 같으니!”“그러시지 말아요, 삼촌. 저도 남녀의 밤일 정도는 다 짐작한다고요.”
선비는 두 번 다시 그 종의 아내 방에 침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배를 쓰다듬고 수염으로 간질이고…

이쯤 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들은 성행위를 하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은 물론, 어떤 때 그것이 부적절한지 판단할 능력도 있다. 열 살쯤 된 아이는 성욕의 문제로 제법 철학적 고민도 한다. 식욕이 먼저냐, 성욕이 우선이냐? 유치한 문제제기라고 치지도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다. 식욕과 성욕은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근본 욕구다. 이야기에 삼촌으로 등장하는 양반은 짐짓 점잖은 체하며 성욕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보다 성적 욕망에 시달리는 젊은이다.

삼촌은 신분상의 이점을 악용해 남몰래 간음을 일삼았다. 간음, 그것은 분명히 법으로도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양반들에게는 이런 법률적 금지사항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양반이 평민 또는 천민 여성과 간음했을 경우, 양반은 천한 여성의 도덕성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얼마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때문에 양반들의 숱한 간음 행위가 당시에는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양반이 양반의 부녀와 간음할 경우에만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이야기 속의 조카는 삼촌의 비리를 들춘다. 삼촌의 도덕적 불감증을 고발한다. 그 아이 역시 따지고 보면 양반이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양반들의 자기비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사춘기 제1기쯤 해당됐을 그 아이의 비난에서 깊은 철학적 반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도 도덕적 건강함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는 갓 쓴 양반들의 어릴 적 모습이다. 삼촌은 아마도 그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장년 또는 노년에 접어든 양반들은 성에 관한 자기들의 편력을 배역을 나눠 그런 식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때로 양반들은 어린시절 부지불식간에 보고 들으며 배운 성적 지식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일에 골몰했다. 다시 다섯 아들을 둔 부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다섯 아들을 둔 부부는 아들을 모두 들판으로 내보내 가축을 돌보게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다섯 아들은 집을 나서는 시늉만 하고는 실은 창밖에 숨을 죽이고 바짝 다가서서 방 안의 동정을 엿보고 있었다. 부부는 그 일을 재미있게 하려고 서로 자극적인 말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아내의 두 눈썹을 쓰다듬으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내가 능청스레 대답했다.

“그것은 팔자문(八字門, 눈썹 모양이 八과 같다는 뜻)이지요.”
남편은 아내의 두 눈을 애무하며 “이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망부천(望夫泉, 길 떠난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는 뜻)이지 무엇이겠사와요?”
아내는 점점 교태를 더해 갔다.
남편은 코를 혀로 핥았다.
“요것은 무얼까?”
“감신현(甘辛峴, 단내 쓴내를 모두 맡는다는 뜻)이지요.”
남편은 점차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아내의 어여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토향굴(吐香窟, 정사 때 입으로 달콤한 냄새를 토한다는 뜻) 아니옵니까?”
남편은 턱을 어루만지며 다시 또 물었다.
“이건 무얼까?”
“사인암(舍人岩, 단양의 큰 바위)이라고 해요.”

남편은 홍조를 띠며 아내의 가슴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온갖 희롱을 다했다.
“이건 또 무엇인고?”
“쌍령(雙嶺)이라고 한다오.”
당연한 일이지만 남편의 손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배를 쓰다듬고 수염으로 간질이고 한창 야단법석을 피웠다.
“요건 무얼까?”
“유선곶(遊船串, 배가 노닌다는 뜻)이라 하와요.”
아내는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드디어 남편은 아내의 거기를 슬그머니 만졌다. 손가락으로만이 아니라 혀와 수염까지 총동원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치미를 떼며 “여기가 어디메뇨?”라고 묻자 “옥문산(玉門山, 여성의 성기가 옥문이므로 그 앞을 지키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겠아옵니까?”

“그럼 이것은?”
“감초전(甘草田, 옥문 안에 돌출된 부분이라는 뜻)이지 뭐겠어요?”
“그럼 끝으로, 이건 또 뭐야? 어이구, 나 죽겠다!”
“온천(溫泉)이옵니다.”남편은 숨을 헐떡이며 질문을 마쳤다.

남편은 흥분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진정시킨 뒤 그의 물건을 정성껏 애무하기 시작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즐겁게 해주며 “이건 무얼까요?” 하고 물었다.

“주상시(朱常侍, 붉은 빛을 띤 채 서 있다는 뜻)라고 하지. 어서 어서!”
아내는 붉은 기둥에 달려 있는 두 개의 새알을 간질이며 웃었다.
“홍동씨(紅同氏) 형제야~.”
“뭘 해요 여보! 내가 아주 죽을 지경일세!”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아들이 와르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급히 의관을 챙기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놈들 같으니! 오늘 해가 저물 때까지 말과 소를 돌보라고 명령했거늘 어찌 이리 제멋대로 군다는 말이냐?”

다섯 아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답했다.
“우리 집 마소는 벌써 배불리 꼴을 먹인 다음 목욕까지 시켜놓고 험한 길을 서둘러 돌아왔건만, 아버님께서는 왜 이다지도 노여움이 심하실까요?”

“대체 어떤 놈이 그걸 봤느냐?”
아버지는 더욱 노기충천하여 “네놈들이 들판에 나간 지 도대체 얼마나 됐느냐? 어디서 무슨 풀을 뜯어 먹였으며 어떤 물에 목욕까지 시켰느냐? 마소가 쉬는 곳이 어디냐”며 버럭 역정을 냈다.
다섯 아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함으로 응수했다.
“처음에는 팔자문으로 나가 망부천과 감신현을 넘어 토향굴·사인암을 지나 간신히 쌍령을 넘은 다음 유선곶을 건너 옥문산에 올라 감초전에서 풀을 뜯어 먹이고 온천수에 목욕시켰나이다.”

아뿔싸, 아버지는 다섯 아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듣고 보니 맥이 탁 풀릴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공연히 커다란 막대기를 불끈 쥐고 다섯 아들을 뒤쫓으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대체 어떤 놈이 그걸 봤느냐?”
다섯 아들이 도망치며 대꾸했다.

“증인이 왜 없겠어요? 주상시와 홍동씨 형제가 그 사실을 증명하면 그만이겠죠!”

굳이 시시콜콜 하나씩 따질 필요는 없는 이야기다. 세 가지 점만 정리하면 족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 머리끝부터 성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을 애무하는 순서와 방법이 열거돼 있어 흥미롭다. 신체의 각 부위의 명칭을 노골적으로 부르기가 어색했던지, 양반들은 비유를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성행위를 몰래 지켜보면서 몸의 이곳저곳을 부르는 칭호를 익혔고, 즐기는 방법도 습득했던 것이다.

둘째, 역시 모든 것은 남성 위주였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상대의 몸을 구석구석 탐색할 권리를 향유했던 만큼 여성의 몸을 세분화된 명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관찰이 허용된 남성의 몸은 오직 그곳뿐이었다. 남성의 ‘주상시와 홍동씨 형제’뿐이었다. 그밖에는 일체 성적 애무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셋째, 자연스레 부모로부터 성교육을 받게 된 아이들도 실은 사내아이들뿐이었다. 앞에서 예로 든 이야기 중에 우연히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경우도 하나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년들이었다. 성별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두세 살짜리 아이를 제외하면 거의 늘 그랬다. 갓 쓴 양반들의 의식 속에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남성이요, 지배층이었을 뿐이었다. 여성과 피지배층은 실속이 전혀 없는 껍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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