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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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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본디 땅은 왕의 것이었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었다(普天之下 莫非王土). 부동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al estate’의 ‘real’이 ‘왕의~’라는 뜻의 스페인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왕족에 버금가는 부족·귀족들이 탄생하면서 다분히 선언적이었던 ‘왕의 토지 독점’은 기술적 표현에 그치게 됐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부자들은 말업(末業)으로 부를 이루고, 본업(本業)으로 부를 지킨다”고 표현했다. 장사를 통해 재산을 불린 뒤 농지를 매입해 보전했다는 뜻이다. 땅에서 계급이 분화했다. 한 편에서는 대장원(大莊園)이, 반대쪽에선 남의 땅에 의지해 연명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농경 사회에서 땅은 권력이자 목숨이었다. “여그 논에 딸린 목심이 수백인디요. 그 목심덜 불쌍허니 생각하셔서 생각을 고쳐주시제라, 지발 적선헌다고.” 소설 『태백산맥』의 소작농들은 부쳐 먹던 논의 새 주인이 그 땅에 염전을 만들겠다고 선포하자 눈이 뒤집힌다. 급기야 땅 주인의 등에 낫을 박아넣으면서 “니만 사람이냐”고 절규한다.

농업이 본업의 지위를 잃은 뒤에도 땅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가시지 않았다. 그 대상이 농지에서 택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땅이 돈을 낳고, 돈이 땅을 낳게 되면서 땅과 집은 관리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관리에 실패한 정권은 뿌리가 흔들렸다.

25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정권이 흔들리는 이때 그 정책을 주도했던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동산 추문으로 경질됐다. 이로써 그는 ‘영끌 대출’과 ‘몰빵 투자’로 부동산 투자사(史)에 일획을 그었던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부동산을 잃느니 자리를 잃겠다’는 기개로 2주택을 지켜낸 전 민정수석, 국가 땅을 맡겼더니 자기네 땅을 발라먹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그들과 함께 이 정권 부동산 정책의 표리부동함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됐다.

4년 내내 부동산을 때려잡겠다고 공언하면서 무주택자들만 때려잡아 온 이 정권의 사람들은 인제야 사죄하고 있지만, 선거 목전의 영혼 없는 발언에서 진심은 엿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부동산 정책에 진심이 담겨있긴 했던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그저 그걸 진심이라고 믿었다가 집 한 채 ‘등기 치기’도 어려워진 백성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