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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원로 박경호 전 해설위원 타계, 향년 92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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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멤버 박경호 전 축구해설위원이 29일 타계했다. 중앙포토

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멤버 박경호 전 축구해설위원이 29일 타계했다. 중앙포토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 한국 우승 주역 중 마지막 생존자인 박경호 전 축구해설위원이 타계했다. 29일 오전 5시30분 입원 중이던 강동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56 제1회 아시안컵 우승 멤버

박 전 위원은 1930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46년 동생 박경화(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씨와 함께 월남해 경신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육군특무부대 소속이던 1956년 축구대표팀에 차출돼 제1회 아시안컵에 참여했고,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여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마땅한 비행기편을 잡지 못해 한국 대표팀이 경기 장소인 홍콩에 첫 경기 당일 새벽에 도착해 대회에 참가한 에피소드가 전한다. 한국은 이후 1960년 국내에서 치른 2회 아시안컵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아시안컵 역사를 통틀어 한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대회는 1956년과 1960년 뿐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 받는 제1회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는 대한축구협회 건물을 여러차례 이전하는 과정에서 한때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2년 중앙일보 취재를 통해 서울 태릉선수촌 내 한국체육박물관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2012년 1월18일자 '애타게 찾던 1956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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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은퇴한 박 전 위원은 육군특무부대를 제대하고 경희대에 편입해 축구부에서 선수 겸 코치로 뛰었다. 이후 한양공고와 건국대, 육군사관학교, 서울대 등에서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했다. 1972년 KBS 축구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고,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친근한 해설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3년 후배 축구선수 노정윤의 일본 J리그 진출을 도운 것을 계기로, 이듬해 창단한 J리그 클럽 오이타 트리니타의 고문을 맡아 14년간 활동했다.

박 전위원의 빈소는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발인은 31일 오전 8시30분이며 장지는 괴산 호국원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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