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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층 투표 안하면 유리하다? 與의 '막말 난타전' 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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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곡동 땅 있는 거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27일)
“수십억에 달하는 도쿄의 최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일본항공의 주식을 100주나 산 토착왜구”(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25일)

민주당 “쓰레기후보” “토건족” 비난 #국민의힘 “토착왜구” “독재자” 맞불 #이전투구 땐 무당층 투표율 떨어져 #이번엔 어느 당에 유리할지 불분명

4·7 재·보선을 앞두고 여야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점입가경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경쟁 후보자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해서 반사 이익을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이다. 열세인 후보가 경쟁자를 따라잡기 위해선 네거티브 공격이 가장 효율적이란 게 선거판의 정설이다. 또 네거티브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선 또 다른 네거티브로 반격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용의 전술이다. 그러다 보니 네거티브 캠페인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막장 이전투구가 되기 십상이다.

28일 오전 서울 서초 고속터미널 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집중유세에서 박영선 후보자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8일 오전 서울 서초 고속터미널 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집중유세에서 박영선 후보자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박영선 후보 캠프는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연일 “토건족” “차별의 대명사” “적반하장의 화신” 등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에 대해선 “돈 욕심이 많고 기억력은 부족하고 공직관도 희박한 사람”(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도발에 국민의힘도 맞불을 놨다. 오 후보는 26일 “제가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중증 치매 환자도 아니고’라고 지적했더니 과한 표현이라고 한다. 야당이 그 정도 말도 못 하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자가 아닌가”라며 “그런 독재자의 면모를 박영선 후보가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 한마디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표를 잃을 수 있는지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면서 막말 경계령을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오 후보는 27일 “문 대통령이 주택 가격 올려놓은 건 천추에 남을 큰 대역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날 선 비판을 계속했다.

중도층 투표장 안 나오면 민주당 유리

네거티브 캠페인은 후진적인 선거 운동 방법으로 비판받지만, 선거 때마다 모든 정당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커윈 스윈트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더 쉽고 오래 기억한다”는 부정성 효과 이론(Negativity Effect Theory)를 주장했다. 한국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선거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사례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이 돈을 주고 병역 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 김대업씨의 ‘병풍(兵風)’ 사건(나중에 허위로 드러남)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동문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동문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번 보선에서 민주당 네거티브 전략은 다목적이다. 우선 과거 보수 정권에 대한 분노를 유발해 느슨해진 전통적 당 지지층의 재결집을 도모할 수 있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24곳이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다. 시의원·구의원도 싹쓸이했다. 선거 조직력은 국민의힘이 도저히 따라올 재간이 없다. 막강한 조직력을 활용해 네거티브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 과거 민주당을 찍었던 유권자들을 다시 묶어 세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네거티브 캠페인은 무당층의 투표율을 떨어트릴 수 있다. 19~20일 실시한 중앙일보-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 유권자 중 50.9%가 오 후보를 지지했다. 박 후보를 지지한 무당층은 17.1%에 불과했다. 무당층에서 전체 지지율 격차보다 훨씬 큰 차이가 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들이 투표장에 안 나오는 게 유리한 셈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면 중도층, 2030 젊은층 등은 투표장에 안 나오는 경향이 있다”면서 “민주당이 투표 참여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과열되면서 정치에 관심이 적은 유권자에게 혐오감과 냉소주의가 커지면서 투표를 하지 않게 된다는 ‘탈동원 가설’이다. 실제로 네거티브전이 가장 치열했던 대선으로 평가받는 2007년 17대 대선(이명박 vs 정동영)은 65% 투표율로 역대 최저치였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주도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약효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입소스가 한국경제신문 의뢰로 26∼27일 서울 유권자 8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오세훈 후보 지지율 50.5%, 박영선 후보 34.8%로 이전 조사와 별 변동이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네거티브는 야당의 무기”라면서 “부동산 문제, LH 땅 투기 사태 등으로 분노를 느끼는 유권자가 여당의 네거티브 전략을 보면서 오히려 분노를 느끼고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무당층은 민주당이 제기하는 ‘MB 프레임’ 등에 별로 관심이 없다”며 “여당인 민주당이 마치 야당인 것처럼 네거티브 전략을 쓰면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당에 대한 심판 정서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정책을 필두로 각종 정책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진 만큼 여당의 네거티브 전략이 거꾸로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부추길 수 있단 것이다.

송승환·성지원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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