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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귀국 못하나" …뉴질랜드, 격리 비용 놓고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0월 호주발 항공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입국한 사람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호주발 항공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입국한 사람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의무 격리 등 방역 조치에 들어가는 비용도 갈수록 늘어나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뉴질랜드도 그중 하나다.

뉴질랜드는 최근 자국민 입국자에 격리 비용을 면제해주는 조건을 까다롭게 바꿨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다. 하지만 유학생과 해외 근로자들은 "돈 없으면 입국도 하지 말란 얘기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뉴질랜드 기업혁신고용부(MIBE)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운영 중인 입국자 격리 프로그램 MIQ(managed isolate and quarantine)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해외에 거주 중인 뉴질랜드 시민권·영주권자들은 국내에 들어와 6개월 이상 머무를 때만 시설 격리 이용료 3100 뉴질랜드 달러(약 250만 원)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그동안 격리 비용을 면제받기 위한 체류 조건은 3개월이었다.

뉴질랜드에 입국한 사람들은 정부가 지정한 시설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시민들에게 격리 시설 이용료를 전액 감면해 줬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입국자 격리 사례가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입국자 격리와 관리에 들어간 비용은 하루 약 240만 뉴질랜드 달러(약 27억 2200만원)로 집계됐다. 이처럼 비용 부담이 커지자 의무 체류 기한을 6개월로 늘여 재정을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MIBE는 임시 비자 소지자에 부과하는 격리 시설 이용료도 현행 1인 1실 3100 뉴질랜드 달러(약 250만 원)에서 5520 뉴질랜드 달러(약 436만 원)로 인상한 상태다.

기업혁신고용부는 "이번 조치가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사람의 약 3%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MIQ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재정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설치된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설치된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해외에 체류하는 뉴질랜드 유학생과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항공료와 검사 비용에 격리 시설 비용까지 추가되면서 목돈이 없으면 귀국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직장 때문에 캐나다에 거주하는 뉴질랜드인 오웬 윌리엄스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의무 체류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면서 뉴질랜드 집 방문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한번 집에 다녀오기 위해선 왕복 항공료 3000달러(약 340만원), 출발 전 코로나 검사 비용 270달러(약 30만원), 격리 비용 3100달러(약 350만원)까지 최소 6370달러 (약 722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해외 거주 근로자들은 회사를 관두지 않는 이상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뉴질랜드 시민이라도 부자가 아니면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라며 울상을 지었다.

현지에선 부족한 격리 시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MIQ 격리 시설 수가 부족해 예약 시스템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이 지정한 격리 시설은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해야 하는데, 이미 6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격리 시설이 없어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뉴질랜드 네티즌은 SNS에서 "부모님을 못 뵌 지 1년이 넘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 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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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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