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네횟집 '시가' 같은 공시가격…국민만 힘들게 하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34.66% 상승해 서울 자치구 중 1위를 기록한 노원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34.66% 상승해 서울 자치구 중 1위를 기록한 노원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주택 공시가격 산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19년부터 고가주택의 공시가를 대폭 올린 데 이어 2030년까지 모든 공시가격을 시세 대비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데 따른 진통이다. 올해만 해도 전국 아파트(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14년 만에 최고치인 19.1%를 기록했다.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 인터뷰 #대폭 오른 공시가에 보유세도 급등 #'깜깜이' 산정 근거에 저항 심해져

공시가격은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 및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0여개 분야의 지표로 활용된다. 그런만큼 시장의 충격파는 크다. 서울만 해도 다섯 집 중 한 집은 공시가격이 9억원을 초과해 종부세를 내야 한다. 서울 강남 주요단지의 1주택자라면 올해 1000만원이 넘는 보유세 고지서를 받게 될 전망이다.

반발이 큰 것은 산정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깜깜이 공시가격’이 많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는 뒤죽박죽 공시가격에 반박하며 자체 검증에 나섰다. 제주의 경우 국토부가 폐가나 공가를 표준주택으로 삼는 등 공시가격을 엉터리로 계산하고 있다며 지자체에 이 기능을 넘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작업은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장인 정수연 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교수)이 주도하고 있다. 정 교수는 2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일각에서는 공시가격이 동네 횟집 주인 마음대로 정하는'시가'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세형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증세 로드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정수연 감정평가학회장. 중앙포토

정수연 감정평가학회장. 중앙포토

제주도는 왜 정부와 싸우나.
“2017년 제주의 공시가 상승률이 1위였다. 표준주택은 18.03%,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20.2% 올랐다. 35년 된, 49.5㎡ 규모의 낡은 단독주택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공시가 급등으로 인해 기초수급에서 탈락했다. 그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일할 수 없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제주도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공시가격 조정권한은 중앙정부에게 있다. 지금은 전국이 난리지만, 제주가 공시가 급등에 따른 문제를 가장 먼저 겪었다. 그래서 지난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공시가격검증센터를 만들었다.” 
뭐가 문젠가.
“공시가격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 이 파급력 큰 지표를 매길 때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투명성, 전문성, 중립성이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다. 산정근거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제도를 만지는 게 문제다.”
국토부는 다음 달 29일 가격참고 자료 등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시범 공개한 세종시와 비슷한 내용일 것으로 예상한다. ‘종합적으로 참작해 산정했다”는 수준의 산정의견뿐이다. 인근 아파트 실거래가를 참조했다고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참조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무엇이 국토부가 기준으로 삼는 시세이자, 적정가격인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세금 낼 때 납득이 될 것 아닌가.”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가 공개한 표준주택의 모습. 국토부가 폐가를 표준주택으로 삼았다가 이를 제외한 뒤 또다른 폐가를 표준주택으로 지정했다는 주장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시가격검증센터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가 공개한 표준주택의 모습. 국토부가 폐가를 표준주택으로 삼았다가 이를 제외한 뒤 또다른 폐가를 표준주택으로 지정했다는 주장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시가격검증센터

시세가 대체 뭔가.
“시세라는 말은 법에 없다. 정확히 시장가치다. 감정평가3방식(원가법ㆍ거래사례비교법ㆍ수익환원법)을 통해 만드는 게 시장가치다. 미국ㆍ영국ㆍ캐나다에서 과세평가에 사용하는 국제표준이다. 일각에서는 공시가격이 동네 횟집 주인 마음대로 정하는'시가'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국민만 힘들다. 해외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미국 플로리다의 경우 과세 국장이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조직의 50% 이상이 평가사다.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도 수십명 두고 있다. 현장조사원이 조사를 통해 공부가 맞는지 다 조사한다. 근거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공시가를 결정하는 중앙부동산평가위원회 회의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정도다.”
정부는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조세 형평성을 말하는데 형평은 곧 균형이다. 모두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고가주택부터 우선 올리고, 저가주택은 천천히 올리겠다고 한다. 균형이 한번 깨지니 뒤죽박죽이다. 공시가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일단 가격부터 동결하고 공시가 관련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 이후 평가 및 산정 체계를 다듬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2021년 공시지가안에 따른 보유세 시뮬레이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세무그룹 온세 양경섭 세무사]

2021년 공시지가안에 따른 보유세 시뮬레이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세무그룹 온세 양경섭 세무사]

세금부담이 크다.
“1주택자에 이런 세금을 매기는 나라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지금 공시가 로드맵은 조세형평이 아니라 증세를 위한 것이다.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올리겠다면 세율 논의부터 다시 해야 한다. 1주택 실거주자나 65세 이상 보유자에 대한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확 낮춰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도 공시가 상승률이 상당할 전망이다.
“이대로 가다간 소리 없이 쓰러지는 사람이 숱하게 나올 거다. 집은 노인들에게 일종의 보험이다. 노후복지 대신 있는 것이 주택 한 채다. 암 걸리면 집 팔아 병원비 충당한다. 그런 집을 보유하고 있다고, 미실현 이익에 대해 세금을 이렇게까지 올리는 건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