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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재신임' 파문] 국민투표 한다해도 산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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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의 재신임을 한다고 해도 그 절차 마련은 산넘어 산의 형국이다. 현행법에는 대통령 재신임에 관련한 규정이 아무 것도 없는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투표 ▶국회 표결 ▶여론조사의 세 가지 방식이 일단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국회 회부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의석 비율 때문에, 여론조사는 설문 대상자의 대표성과 조사 시기.방법을 놓고 객관성에 시비 소지가 있다.

따라서 원용할 수 있다면 헌법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명시된 '국민투표'가 그 중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대통령의 진퇴 문제는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대 문제라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국민투표의 입법 취지는 국가가 중대한 순간에 처했을 때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므로 대통령 재신임과는 맞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 투표용지에 '재신임'난을 함께 만들어 동시에 투표에 부치거나, 盧대통령의 특정 정책을 놓고 투표에 부쳐 반대할 경우 불신임으로 간주하는 방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민변의 차병직 변호사는 "가령 이라크 파병 등의 특정 정책을 찬반에 부치면서 반대표가 더 많을 경우 물러나겠다고 약속하는 식의 형태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국민투표를 했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투표 결과가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할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의 경우는 '유권자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효력 조건이 명시(헌법 130조)돼 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의 경우 '찬성과 반대, 무효표 등을 확정해 공표'(국민투표법 89조)만 하도록 돼 있다.

즉 대통령이 투표 결과를 무시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게 법학자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예컨대 국민 과반수가 불신임 표시를 했을 경우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하더라도 위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과반수를 재신임의 기준으로 한다"는 등의 명시적인 국민투표법 개정 문제가 뒤따른다. 이럴 경우 법 개정이 국회의 손으로 넘겨질텐데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논란이 예상된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 만의 하나 盧대통령이 하야(下野)하게 될 경우 헌법 68조 2항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는 선거를 해야 한다. 이때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한다.

김원배.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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