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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연설서 북핵 뺀 왕이, 미국 비핵화 압박에 무관심 전략

중앙일보

입력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화상 연결 방식으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미중관계 등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화상 연결 방식으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미중관계 등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7일 중국의 올해 외교 방향을 예고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북핵과 한반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100분 간 진행된 올해 기자회견은 예년과 달리 순차 통역이 없이 이어져 실제로는 발언 분량이 1.5배가량 늘었음에도 북핵이 빠진 것은 이례적이다. 왕 부장은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지난해 회견에선 “미국 측의 실질적인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북·미 대화를 정체에 빠뜨린 중요한 원인”이라며 “‘단계적·동시적’ 로드맵을 빨리 만드는 것이 한반도 핵 문제 해결 발상”이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촉구조차 생략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한반도 주변의 동맹국·우방국과 연대하는 비핵화 압박 전략을 준비하자 아예 무관심 전략으로 대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외교팀이 추진할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은 먼저 카드를 내놓지 않는 식으로 비협조 의사를 내비쳐 한반도 문제와 대미 관계에서 미국이 먼저 요청하게 만들어 협상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화상 연결 방식으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중국 내외신 기자들. 이날 회견장에 참석한 기자들은 오전 6시에 모여 별도의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았다. 신경진 기자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화상 연결 방식으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중국 내외신 기자들. 이날 회견장에 참석한 기자들은 오전 6시에 모여 별도의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았다. 신경진 기자

북핵과 한반도 언급이 사라진 대신 왕 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내정 간섭을 말라”고 요구했다. 왕이 부장은 “미·중 관계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며 “중국이 잘하건 못하건 중국 인민이 발언권이 있으며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만 문제는 미국에 양보할 수 없음을 확실히 밝혔다. 그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미·중 관계에서 건널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서 타협의 여지나 물러설 공간은 없다”고 선언했다. “양안은 반드시 통일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며 “중국은 어떤 형식의 대만 독립 분열 행위이건 좌절시킬 능력이 있다”고 통일에 대한 의지를 예년보다 크게 강조했다.
이번 양회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홍콩 선거제도 개정 의지도 분명히 했다. 왕 부장은 “홍콩은 식민통치 시기에 어떠한 민주도 없었다”며 “중국 중앙 정부보다 홍콩의 민주 발전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고 주장했다. 홍콩의 선거제도 개정이 일국양제의 소멸이라는 서구의 비판에 대한 반박이다.
왕 부장은 단 미국에 협력을 촉구하며 강온양면책을 구사했다. 그는 “세계 1·2위 경제 규모로 이익이 교차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라면서도 “핵심은 공평·공정의 기초 위에서 펼쳐져야 하며 서로 공격하거나 제로섬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방역, 경제 회복, 기후 변화 등 협력에 필요한 리스트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면서 “불합리한 제한은 풀고 새로운 인위적 장애물을 다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이날 회견에서 러시아→이집트→미국 기자 순서로 질문을 받고 답변해 러시아와 중동 등 제3세계를 미국에 앞서는 현안으로 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왕 부장은 한편 미얀마 유혈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미얀마의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미국이 공개 비판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를 끌어당기려는 발언이다. 그는 “가장 시급한 임무는 새로운 유혈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라면서도 “미얀마 정세가 어떻게 변해도 중국의 미얀마와의 우호 협력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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