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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메멘토 모리, 나의 ‘웰다잉’을 매일 생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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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죽음의 기술’이라는 이 말은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중세 유럽에서 발간된 일종의 죽음 준비를 위한 지침서의 제목이다. 전쟁과 기아, 그리고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죽음이 일상화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아르스 모리엔디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삶과 죽음 문제, 평소 자주 다루고 #‘죽음 준비 교육’ 공교육에 반영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나의 죽음을 매일 생각하라는 항목부터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신문·방송·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나 역시 갑자기 또는 오랜 병치레를 겪거나 노쇠해서 결국은 죽게 된다는 사실만 인정한다면 하루에 한 번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일 수 있다.

지난 학기에 필자는 죽음학(Thanatology) 강의 시간에 매주 죽음을 이야기했다. 수업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이제야 죽음에 대해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진로 고민이 정리됐다”, “내가 처한 환경에 더욱 감사하게 됐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렇게 일상 속으로 나의 죽음을 끌어들이면 내 삶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이고, 내게 남은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더욱 숙고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관점과 실질적 문제를 놓고 대화하라는 항목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모와 자녀, 친구들, 가까운 직장 동료와 차 한잔을 앞에 놓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도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친밀하게 대할 수 있는 죽음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아야 죽음 준비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죽음 문화’라는 측면에서 비슷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해 온 한국·일본·대만 세 나라를 비교해 보자.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죽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미국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기 시작했다. 죽을 권리를 주장해온 ‘존엄사를 위한 일본 협회’는 회원이 10만 명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죽음 관련 단체다.

대만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삶과 죽음을 연구하는 생사학(生死學) 연구와 교육이 시작됐다. 미국 템플대에서 10년 넘게 ‘죽음과 죽음의 과정’을 가르쳤던 푸웨이쉰(傅偉勳)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 그 결과 지난 30여년 동안 의대·간호대·교육대와 가톨릭대학 등에 생사학과가 생기면서 연구는 물론 죽음 교육을 담당할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일반 고교 과정에도 이런 내용을 추가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죽음 문화는 어떨까. 1997년 한림대 철학과에 죽음 준비 교육 과목이 처음 개설됐다. 2004년에는 생사학연구소가 설립돼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연구와 자살예방 및 죽음 준비의 실질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의료인을 양성하는 의대와 간호대, 초·중·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 종교인을 교육하는 기관 등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온갖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사태로 보이지 않는 죽음을 시시각각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럴 때야말로 공교육과 시민사회의 죽음 준비 교육이 발맞춰 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아스피체 모르템(Aspice Mortem), 즉 죽음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 보자.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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