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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최악 구직난 청년 변호사, 법치주의 확산에 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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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청년실업 문제가 기성세대의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어느 세대보다도 많이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청년세대가 뜻을 펼 곳을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청년 본인과 가족의 불행이지만, 그들의 자질을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불행이자 손실이다.

청년 법조인들도 실업 고통 심각 #정부·지자체·법원·검찰 활용해야

비슷한 현상이 변호사 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전공 지식과 법률 소양으로 무장한 청년 변호사들이 그에 걸맞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재소자의 집사’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것은 청년 변호사들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인재들의 역량을 낭비하고 더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는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불행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흔히들 변호사 숫자의 급증을 지목하고 그 해결책으로 변호사 수를 줄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변호사 수가 급증해 과거에 변호사들이 누리던 희소가치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호사 수를 제한해 예전의 가치를 되찾자는 주장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청년 변호사들도 성장하고 한국사회도 혜택을 보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늘어난 변호사들이 전통적인 송무(訟務) 영역을 넘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국민의 권익 보호와 법치주의 실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구상을 해 볼 수 있다. 먼저 행정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법무 담당관을 변호사로 채용하고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 부처의 변호사 숫자는 여전히 미미하다. 법 규정 작성과 해석, 소송 수행 같은 법무 업무조차 변호사 아닌 일반 행정 직원이 순환보직에 따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업무들을 담당할 청년 변호사들을 과감하게 채용하고 일을 맡겨야 한다. 성과가 괜찮으면 좁은 의미의 법무를 넘어 감사·재무·계약·복지 같은 업무에도 희망하는 청년 변호사를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감한 시도를 통해 기존 공무원 조직에 신선한 자극을 주입할 수 있다. 각 부처에 흩어진 변호사들을 총괄적으로 지원 및 감독하는 조직을 법무부나 국무조정실에 만들어 정부 내부의 변호사 업무의 효율과 직무 역량을 증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법원의 재판연구원(로클럭)도 대폭 늘려서 사건 적체에 신음하는 법원 시스템에 활기를 불어넣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전국의 판사는 약 3000명이고 판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원은 약 300명이다. 판사 10명 당 재판연구원 1명꼴이다. 사건 기록과 법리를 분석하는 재판연구원을 두 배만 늘려도 주요 법원의 사건 처리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검찰의 경우에도 검사와 수사관으로 된 이분법적 인력 구조를 넘어 ‘검사 아닌 변호사’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 이외에도 국가 송무, 소년 보호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 종래 이런 업무는 비핵심 업무로 간주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한 측면이 있다.

이런 업무에 청년 변호사들을 투입해 검찰의 새로운 기여 영역을 가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종래 법무부와 검찰에서 공익 법무관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병역 자원의 급격한 감소에 따라 이들을 대체할 청년 변호사의 고용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청년 변호사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차원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공공 법률서비스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개선하자는 취지다. 유능한 청년 변호사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면서 한국사회 곳곳에 법치주의가 확산하도록 기성세대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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