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결국 사퇴…"민주주의·법치위해 광야에서 싸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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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대구고검과 지검에서 직원과의 간담회를 끝낸 후 차량을 타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대구고검과 지검에서 직원과의 간담회를 끝낸 후 차량을 타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적으로 자진사퇴했다.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을 통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추진에 중앙일보와 인터뷰 등에서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역사의 후퇴" 등으로 공개 반기를 든 지 이틀 만이다. 지난해 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에도 맞서 버텼지만 사실상 검찰 해체엔 총장직을 버리고 광야에서 대국민 반대 투쟁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검찰에 남아서는 더 이상 할일이 없다고 판단했다"라며 "밖에서 중수청 설립과 검수완박 반대를 위해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대국민 사의 발표 전문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합니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윤 총장은 이날 오전 휴가를 내고 자택에서 거취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전날 대구고검·지검 순회 일정을 마친 뒤 오후 9시께 서울로 출발해 늦은 밤 자택에 도착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지방 출장을 다녀오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하거나 오전 휴가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날 휴가의 의미는 평소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 추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내 윤 총장이 거취를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다.

윤 총장은 전날 "지금 진행 중인 소위 말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라며 여권을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선 "'국민의 검찰'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해 상대적 약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꺼냈다. 윤 총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에 대해 "법치 말살, 민주주의 퇴보"라고 표현하며 "이를 막기 위해 직(職)을 걸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윤 총장 주변의 한 인사는 "여권이 본인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국가 시스템까지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우려 크다"며 "더는 지켜볼 수 없고, 본인이 그만둬야 멈출 것"라는 윤 총장의 속내를 전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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