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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연습 안하는 게 장점” 그런 평가받던 그 피아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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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피아니스트 이나우

피아니스트 이나우

“무대 연주는 성진이가 정말 잘하고 있죠. 그리고 정범이 형이 독일에서 콩쿠르 우승하는 걸 보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난 정말 틀렸다’.”

JTBC ‘슈퍼밴드’ 3위 이나우 #독특한 스타일에 대중들도 호응 #“연주로 청중 마음 빼앗을 자신 있어”

피아니스트 이나우(28)는 예원학교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27)의 1년 선배였고, 2017년 독일 뮌헨의 ARD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손정범(30)의 한예종 후배다. 그의 선후배 중에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이 둘 말고도 많다. “박종해 형, 김태형 형…. 치는 거 다 보면서 나는 안 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두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린, 결점 없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들이다.

이나우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자라며 피아노를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부터 다녔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독일로 떠나 뮌헨 음대, 뮌스터 음대에서 공부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길은 바뀌었다. 2019년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에 출연해 ‘퍼플레인’ 팀으로 3위를 했고, 이달 ‘블루밍 어게인’이라는 피아노곡을 작곡해 싱글로 발표했다. 클래식과 대중 음악의 경계에 서 있는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음악가로서 단점이 많지만, 그만큼 장점이 분명하다”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쳤지만 그는 “죽기 살기로 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우선 중학교 전까지 16분 음표 같은 빠른 음을 쳐본 적이 없었어요. 악보도 잘 못 봐서 선생님이 치는 걸 녹음해 따라 치고, 나중에 악보를 보고는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했죠. 오래 연습하는 것도 지루해서 못하고요.” 그는 그저 재미를 위해 피아노 치고 노래하며 자랐다.

무대에서 실수가 잦고, 주눅도 들었지만 색깔은 분명했다. 한예종의 임종필 교수는 그에게 “어쩌면 네 장점은 연습을 안 하는 것”이라 했다 한다. 음악을 기계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생각이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선생님마다 ‘네 세계를 해치고 싶지 않다’며 내버려 두셨어요.” 그는 피아노만 치는 대신 집에 있는 기타를 혼자 쳐보고, 유행가를 노래하며 피아노로 쳐보고, 자기 음악을 만들어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위기는 독일 유학 시절에 왔다. “저들만큼 실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승부욕도 없고…. 아, 나는 바퀴 달린 걸 좋아하니까 오토바이 타고 물건을 배달하거나 택시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일 집 월세가 밀린 채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할 때도 별 희망은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권해서 도전했는데 큰 기대는 없었어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이나우의 독특함이 인정받았다. “번개가 치는 듯 소름”(이수현),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편곡”(김종완) 등 심사평이 잇따랐다. 대중도 호응했다.

“클래식 음악을 할 때도 저는 장점이 분명히 있는데 단점을 덮을 만큼이 아니라 고민했거든요.” 이나우의 이런 고민이 ‘슈퍼밴드’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쇼팽이나 베토벤 협주곡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고 싶어요. 클래식 연주에서도 한 번 들은 사람의 마음을 가져올 자신이 있어요.” 이나우는 클래식 뿐 아니라 대중음악 밴드, 작곡 활동을 계속하며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이 아닌, ‘매력 있는 음악가’가 되길 꿈꾼다. “음악을 흔쾌히 택했으니까, 계속 걸어가야죠.”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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