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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두드린 한국, 그냥 건너자는 WHO…AZ 다른 판단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관계자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16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관계자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세계보건기구(WHO)가 18세 이상을 대상 전 연령층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 승인을 결정했다. 질병관리청이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과 관련해 미국의 임상 3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백신 접종을 미룬 것과 다른 판단이다. 같은 임상 자료임에도 두 전문가 집단의 결정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기보다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성 문제X, 확산세 잡자는 WHO

전 세계 보건ㆍ위생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WHO는 ‘시급성’을 먼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만 65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 유효성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맞지만,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시작해 확산 세를 잡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실제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교의 시스템사이언스·엔지니어링센터(CSSE)에 따르면 15일 기준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1억 880만명, 사망자는 239만 9393명이다. 지난 14일에는 전 세계 일일 신규 확진자가 27만 5900명으로 집계되며 4개월 만에 20만명대로 떨어졌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기존보다 전파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ㆍ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지난 1일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브리핑에서 “확산하는 새로운 변이들에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빠르고 신속하게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WHO의 면역 자문단인 전문가전략자문그룹(SAGE)의 알레한드로 크라비오토 의장은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과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고령층의 (접종에 대한) 반응이 그보다 낮은 연령대 그룹과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WHO뿐 아니라 앞서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18세 이상의 모든 연령이 아스트라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현재 영국 등 50개 국가에서 조건부 허가 또는 긴급 사용승인을 했다.

질병청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임상 결과 대기

감염병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다. 뉴스1

감염병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다. 뉴스1

반면, 한국의 경우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정경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관리반장은 브리핑에서 고령자에 대해 접종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효능이 확인된 백신을 접종하는 게 가장 좋다는 판단이었다”며 “(3월 말에서 4월 초) 추가 임상 결과가 확인되는 대로 접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임상시험에 참여한 성인 8895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7.4%(660명)에 그친다. 안전성 문제는 없으나 통계적으로 유효한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충분한 피실험자 수가 확보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은 접종 연령을 65세 미만으로 폴란드는 60살 미만, 벨기에는 55살 미만으로 권고했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고령자들에게 효과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이상 일단 보류하는 게 맞다. 지금 선택지를 보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신 대안 없어…아쉬운 결정”

16일 충남 천안시 천안실내배드민턴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중부권(대전·세종·충남·충북) 권역 예방접종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예방 접종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6일 충남 천안시 천안실내배드민턴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중부권(대전·세종·충남·충북) 권역 예방접종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예방 접종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결정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 연령을 제한한 일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 화이자나 모더나 등 다른 백신을 도입해 접종을 이어가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아스트라제네카 외에 도입 시기와 물량이 결정된 백신은 화이자뿐인데 영하 70도를 유지하는 저온 유통이 필수라 요양시설ㆍ요양원 입소 환자들에게 접종이 어려운 상황이다. 모더나와 얀센, 노바백스의 경우 구체적인 도입 시기와 물량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에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지금 안 맞으면 최소 두 달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일부 유럽 국가를 따라갔다”며 “이러다 4차 유행이 시작되면 억울하게 사망하는 분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권고사항에 고령층 접종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추가해 의사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여기서부터 꼬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두 주장 모두 맞는 말이다. 단지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의 문제”라며 “백신의 경우 불확실성이 커 정부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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