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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졸업식날 교문 앞 점거했던 꽃장수들 어디로 갔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69)

그동안 드라이브스루는 커피나 햄버거를 살 때 사용하는 말로만 알았다. 언젠가부터 코로나 검사에 이 말이 사용되면서 이젠 아이들도 아는 말이 되었다. 사실 몰라도 좋았을 말이 언제부턴가 자꾸 새 둥지를 틀곤 한다. 이를테면 ‘드라이브스루 졸업식’, ‘비대면 졸업식’이 그것이다.

졸업생을 태운 차가 운동장에 쓱 진입한다. 조건은 시차를 두어야 한다. 당연히 친구들은 만날 수도 없고 장난스러운 졸업 사진은 찍을 수도 없다. 차 안에서의 졸업이라니! 살다 살다 이런 것도 있구나 싶다.

코로나시대의 비대면 졸업식은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아이패드7. [그림 홍미옥]

코로나시대의 비대면 졸업식은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아이패드7. [그림 홍미옥]

사랑땜도 하기 전에 작아져버린 새 교복

첫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만큼이나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또 기분 좋은 설렘을 주는 경험은 또 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않은 내 아이가 정장 타입의 첫 교복을 입었을 때다. 의젓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기분을 겪어본 이는 알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교복 입기는 설레기도 전에 사그라져 버렸다.

작년 이맘 때였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사러 간 조카 녀석의 입은 함박같이 벌어졌다. 어딘지 모르게 아빠의 양복 같기도 하고 언감생심 넥타이라는 것도 매어보니 어찌 아니 좋겠는가! 마치 어른이라도 된 듯 뿌듯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녀석은 정작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겨울 교복, 즉 동복은 팔 하나도 꿰어보지 못한 채 하복을 맞추라는 공지사항을 전달받았다. 게다가 청소년기의 성장을 누가 막겠는가. 코로나로 인해 등교를 못 할 동안에도 청소년은 쑥쑥 자라기 마련이다. 아빠의 멋진 양복 같던 겨울 교복은 작아서 맞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뭔가를 장만하면 소위 ‘사랑땜’을 한다며 얼마간은 그것만 쓰고 입는 게 보통이다. 새 학교, 새 가방. 새 교복에 부풀었을 녀석의 중1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그랬듯이.

최근 대부분의 학교졸업식장에 마련된 포토존. [사진 다니엘 이글레시아스]

최근 대부분의 학교졸업식장에 마련된 포토존. [사진 다니엘 이글레시아스]

비대면 졸업식과 축하 배달음식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왠지 졸업식에서 울면 창피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대강당을 빌려 진행됐던 나의 몇십 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 얘기다. 당시만 해도 답사·송사, 졸업식 노래 등이 진행되면 여지없이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특히 초등학교 졸업식이 대표적이었다. 교문 앞엔 조악한 꽃다발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팔던 꽃장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늦게 살수록 가격이 내려가던 경험은 재밌기까지 했다.

졸업장을 넣는 길고 좁은 원통엔 뜬금없이 금색 봉황이 수 놓여 있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제법 고급스러웠지 뭔가. 아무튼 왁자지껄 분주했던 졸업식의 풍경이었다. 졸업식 날의 마무리는 어김없이 중국집 짜장면이나 탕수육이 보통이었다. 그러던 게 피자집이나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몇 년 전부턴 SNS 맛집 탐방으로 졸업식 날의 행사는 끝이 나곤 했다.

졸업식이라는 행사 자체가 없어져 버린 지금, 당연하게도 졸업 축하 회식도 보기 힘들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청나게 다양해진 배달 음식이 축하의 식탁을 대신 차려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졸업특수가 사라진 한적한 꽃시장. [사진 홍미옥]

졸업특수가 사라진 한적한 꽃시장. [사진 홍미옥]

비대면 졸업식이라는 낯선 명칭이 우리들 속으로 들어왔다. 컴퓨터 화면으로 졸업식을 치르고 학교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어색할 것 같기만 한 비대면 졸업식은 이미 온라인 수업으로 다져진(?) 아이들에겐 식은 죽 먹기다. 그러자 아쉬운 마음에 많은 학교에선 졸업 포토존을 설치하고 나섰다. 쇼핑몰 신장개업에서나 보던 오색풍선 아치가 교정, 교실에 꾸며진 거다.

하지만 순번을 정해 기념촬영을 해야 한다. 요즘엔 친구, 가족이라도 만나는 게 죄가 되고 민폐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졸업 특수를 기다리던 꽃시장은 이번에도 고개를 떨궈야 했다. 학교 앞 도로를 점거하다시피 한 꽃장수들의 즐거운 외침과 흥정은 사라졌다. 꽃시장도 싱그런 향기로 가득하지만 찾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상인들의 한숨도 그만큼 깊어져 가는 중이다.

살면서 몰라도 되었을 말들! 드라이브스루 졸업식, 비대면 졸업식 등 이 신박한 말이 왠지 씁쓸한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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