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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코로나 결혼식장의 진풍경 ‘마스크 축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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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66)

“파라 바랄 라밤바~”
첫 소절만 들어도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노래 ‘라밤바’는 영화의 OST이자 멕시코 민요다. 더불어 베라크루즈 지방의 결혼식 축가로도 알려져 있다. 결혼식은 즐거운 잔칫날이니 저렇게 신나는 축가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신나는 노래와 풍성한 식탁이 어우러진 결혼식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코로나19의 결혼식장, 신랑신부를 제외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치러진다. 결혼축가마저도 마스크를 쓴 채 부르는 요즘 결혼식장/ 아이패드7.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코로나19의 결혼식장, 신랑신부를 제외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치러진다. 결혼축가마저도 마스크를 쓴 채 부르는 요즘 결혼식장/ 아이패드7.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제아무리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나게 마련이다. 또 그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지난달 여전히 코로나19가 극성일 때 친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세상 모든 이에게 축복을 받아 마땅하고 즐거워야 할 잔칫날인 결혼식이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식장 입장 인원수도 제한이 되다 보니 초대하는 쪽이나 초대받는 쪽이나 선뜻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결혼식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등장하곤 했다. 전국적인 거리 두기로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유행처럼 번지던 ‘스몰웨딩’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어찌어찌 다행스럽게 결혼식 날이 왔다. 평소의 결혼식장 로비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건네느라 왁자지껄 소란스러웠을 터다. 이런 잔칫날이 아니면 언제 얼굴을 마주할지 모르는 먼 친척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고. 당연한 일상이 특별함이 되어버린 지금, 결혼식장은 지나치게 차분하기까지 했다.

하얀 마스크로 드레스코드 완성 

코로나 2.5단계에 치러지는 결혼식은 양가 혼주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사진 홍미옥]

코로나 2.5단계에 치러지는 결혼식은 양가 혼주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사진 홍미옥]

미증유의 2020년 12월의 결혼식장은 사뭇 달랐다. 잔뜩 양복을 빼입고 온 어르신도, 친구의 결혼식에 한껏 멋을 부리고 온 하객도, 어김없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결혼식을 치르는 양가 혼주도 예외는 없었다. 고운 한복 위의 하얀 마스크가 낯선 건 당연했다. 물론 때가 때이니만큼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그래도 낯설고 어색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객도 거리 두기 기준에 맞춰 앉다 보니 식장은 평소보다 더 넓어 보였다. 실내는 여전히 반짝이고 환한 꽃으로 아름다웠지만, 결혼식 특유의 흥겨움은 사라진 듯했다.

신랑·신부를 제외하고 온 하객이 마스크를 쓰고 진행되는 코로나 시대의 결혼식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신부의 순백 웨딩드레스와 하객의 백색 마스크로 드레스코드가 완성되었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고 주례사가 시작됐다. 어김없이 주례사도 마스크 속에서 들려옴은 물론이다.

압권은 결혼 축가였다. 얼마 전 가수 소녀시대 티파니의 ‘마스크 축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커다란 마스크 위로 눈만 내놓은 티파니의 모습이 뉴스를 장식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이제 마스크 축가는 화젯거리도 아닌 모양이다. 세계 각국의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날, 축가를 부르는 청년은 마스크 속에서나마 열정적으로 신랑·신부에게 축하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여느 결혼식 축가보다 더 감동적이어선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언제 국수를 먹게 해줄 거냐는 말은 결혼식을 상징하는 말이다. 요즘이야 피로연에서 잔치국수를 내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이 그렇다. 귀한 시간을 내준 하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픈 양가의 마음도 무색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자리를 음식 대신 답례품이 대신하고 있었다. 지자체의 특산물이나 건강식품, 더치커피 같은 기호식품이 답례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채 축가를 부르든, 뜨끈한 갈비탕 대신 작은 답례품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세간에는 지긋지긋한 2020년을 통째로 들어내고 싶다는 말이 나돌곤 한다. 그만큼 모두에게 힘든 한해였다. 2021년 새해는 우릴 무슨 시험대에 올려놓을지 모른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희망의 빛이 반짝이고 있으니 끈을 놓을 순 없다. 모쪼록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신랑·신부의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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