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도·태평양 질서가…" 바이든 취임 뒤 文 발언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질서가 급격한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며 “굳건한 한ㆍ미 동맹과 함께 주변국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지금의 전환기를 우리의 시간으로 만들어 갈 때”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및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및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한ㆍ미 양국 정부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국제연대와 다자주의에 기반한 포용적이며 개방적 국제질서를 만드는데 긴밀히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NSC 전체회의는 취임 후 10번째로, 지난 2019년 3월 북ㆍ미간의 ‘하노이 노딜’ 이후 22개월만이다. 특히 이날 회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맞춰 외교부ㆍ국방부ㆍ통일부 등 외교ㆍ안보 부처의 업무보고를 겸해 개최됐다. 트럼프 정부와 추진해왔던 한ㆍ미, 남북 정책 기조를 재점검하기 위한 회의란 뜻이다.

주목할 점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3년 반여만에 처음으로 ‘인도ㆍ태평양 체제’를 국제정세를 판단하는 새로운 틀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인도ㆍ태평양 전략’이란 말 자체 속엔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국이 참여해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까지 이어져온 '트럼프-아베'시대의 미·일 협력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한·중 관계 등을 고려해 인도ㆍ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쓰는 걸 자제해왔다. 취임 첫해인 2017년 11월 한ㆍ미 정상회담 직후에는 김현철 당시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일본이 인도ㆍ태평양 라인을 연결하는 외교적 라인을 구축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기조 변화는 다른 발언에서도 읽혔다.

특히 대일(對日) 관계에 대해선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지혜를 모으며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뒤 “특히 올해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도록 협력하면서 한ㆍ일 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 진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직후 22개월만에 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국제 정세 변화 등에 대한 전략을 수정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직후 22개월만에 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국제 정세 변화 등에 대한 전략을 수정했다. 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새로 들어오는 ‘바이든팀’이 중국에 대응하는데 있어 한ㆍ미ㆍ일 세 나라를 묶어서 힘을 합치는데 상당히 비중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주장도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그간 미ㆍ중 간의 전략경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만 한반도 문제와 국제 정세를 이해해온 측면이 있다”며 “대중(對中) 가치동맹을 요구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를 뒤늦게나마 수용하면서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마지막 노력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튼튼한 한ㆍ미동맹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안보환경에 더욱 능동적으며 주도적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한ㆍ미동맹을 더욱 포괄적이며 호혜적인 ‘책임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및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왼쪽은 전날 개각으로 교체가 예정된 강경화 외교부장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및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왼쪽은 전날 개각으로 교체가 예정된 강경화 외교부장관. 연합뉴스

전날 개각을 통해 새로 구성한 정의용(외교부장관 후보자)·서훈(안보실장)·박지원(국정원장)·이인영(통일부장관) 등 새 외교·안보 라인을 향해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오랜 교착상태를 하루 속히 끝내고 북ㆍ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평화의 시계가 다시 움직여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며 “우리 정부에 주어진 마지막 1년이라는 각오로 임해달라”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남북관계 진전과 평화프로세스 동력을 확보하는데 보다 주도적 자세로 각 부처가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반면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이날 문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 등의 표현을 쓴 데 대해 “아마추어적 즉흥 외교를 했던 트럼프 때와 비교해 바이든 행정부는 상당히 신중한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며 “인도ㆍ태평양 등을 앞세워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것처럼 포장하면서도 실패로 확인된 트럼프 정부 때의 전략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이런 한국 정부에 대해 신뢰를 가질지 의문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같이 갑시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한국은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자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 바이든 행정부의 여정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바이든 대통령과 직접 만나 우의와 신뢰를 다지고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축전에 앞서 SNS에 취임 축하 글을 올려 “미국이 돌아왔다. 미국의 새로운 시작은 민주주의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하나 된 미국을 향한 여정을 우리 국민과 함께 성원한다. 같이 갑시다”라고 적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