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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지역 '질병 후폭풍' 더 무서워

중앙일보

입력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의 꼬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

엄청난 인명.재산상 피해를 입히고도 성이 차지 않았음인지 실의에 빠지거나 복구작업에 나선 주민들의 건강을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이 할퀴고 간 지역에서 이질.콜레라.장티푸스 등 수인성 전염병과 피부병 등이 유행하기 쉽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이 질병들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대부분 발병후 수일~수주 안에 치유된다. 또 오염된 물이나 상한 음식을 멀리하는 등 기본적인 위생 규칙을 철저히 지키면 예방이 가능하다.

문제는 수해를 맞은지 1주일 쯤 후부터 찾아오는 각종 질환과 정신적인 상처다. 태풍 등 수해를 입었을 때 우리의 건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아보자.

◇ 감기.폐렴.천식.눈병을 주의한다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교수는 "당장 이번 주부터는 태풍 피해지역에서 감기.폐렴 환자가 다발할 것"으로 예측한 뒤 "보온이 잘 안 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물에 젖은 몸으로 오래 지내다 보면 체온 변화가 심해져 감기.폐렴 등에 걸리기 쉬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온이 떨어지는 저녁엔 보온에 더 신경 쓰고 따뜻한 보리차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젖은 옷은 즉시 벗어서 말리고 수시로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높은 습도로 인해 각종 곰팡이균이 많아져 알레르기성 비염.천식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젖은 피부를 말리지 않으면 피부 곰팡이병인 무좀도 기승을 부리게 된다.

눈병은 감염 후 5~14일 후부터 증상이 나타난다.초기엔 눈이 충혈되고 가려움증.약간의 통증이 있다가 심해지면 눈물.눈꼽이 많이 생기며 눈꺼풀이 심하게 붓는다.

한양대구리병원 안과 송병주 교수는 "치료기간엔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가 필요하며,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접촉이 쉬운 곳은 피하라"을 조언했다.


◇ 복구 작업땐 장화와 장갑을 착용한다

대표적인 가을철 전염병중 하나인 렙토스피라병은 수해 복구작업이나 논일 도중 피부를 긁히거나 다치면 그 상처를 통해 균이 들어와 발병한다.이 병에 걸리면 고열.오한.근육통이 생기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따라서 태풍에 쓰러진 벼를 일으키는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장화나 장갑을 끼어야 한다.

복구작업 중에 입은 손.발의 상처를 통해 세균이 침입하면 봉와직염으로 상처가 악화될 수 있다.특히 무좀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봉와직염은 서둘러 치료해야 패혈증으로 병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만성 질환자는 약 복용에 신경 쓴다

평소 당뇨병.고혈압.심장병 등 지병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들은 수해로 경황이 없어져 약 복용을 소홀히 하기 쉽다.또 음식 섭취가 불규칙해져 영양이 부족해지고 과도한 복구작업.허탈감.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수면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이는 결국 병세의 악화로 이어진다.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손중천 교수는 "만성질환자는 약을 잘 챙겨 먹고 수해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건강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가족과 친지들의 정서적 지지가 중요

수해에 따른 충격.스트레스.급격한 환경변화는 신경성 질환을 부를 수 있다.평소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이 약하거나 주부.노인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리고 불면.두통.소화장애가 올 수 있다.이때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관심이 중요하다.수면이나 식사 역시 규칙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연세대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이홍식 병원장은 "이번 태풍 '매미'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재난을 경험했을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며 "대규모 자연재해.자동차 사고.테러.전쟁 등을 경험한 경우 적게는 5%,많게는 75%가 이 장애에 시달린다"고 조언한다.

이 장애의 주증상은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당시 상황을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이다.또 사건이 일어난 곳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고 대인관계도 멀리 한다.불면.불안.우울증.집중력 저하도 흔히 동반되며 극단적으론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교수는 "이번 수해에선 지난해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었던 지역 주민들이 간신히 재기를 다지는 도중 다시 물난리를 겪음으로써 심한 좌절과 의욕상실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가족.친지.동료의 정서적 지지와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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