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법 적용땐 문 닫았을 것" 사고 뒤 산재 '0' 바뀐 中企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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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에 소재한 산업용 기계 제조업체인 A사에선 2018년 기계 과부하로 근로자 한 명이 숨졌다. 같은 해 경기도 화성시의 B사(금속가공업)에선 근로자 2명이 작업용 기계 날에 심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년 전 사망사고, 중상자 2명 발생한 중소기업 두 곳 #사고 뒤 예방시설 확충…재해율 0% 클린사업장 변신 #"중대재해법의 처벌 잣대 적용했다면 사라졌을 것" #정부·지자체 등의 예방 지원 확대가 사고 없애는 길

중대재해법을 적용했다면 이들 회사의 경영 책임자는 최소 1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법인에도 막대한 금액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50인 미만 소규모에 속하는 이 회사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몰리게 된다.

한데 이 사고 이후 두 회사에선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산업안전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A사는 재해율 50%에서 0%로, B사는 16.7%의 재해율을 보이다 재해율이 0%가 됐다. 이런 변신이 가능했던 건 사업장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거친 뒤 재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예방시설을 확충한 덕이다.

산재예방시설만 갖춰도 재해율 3분의1 감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산재예방시설만 갖춰도 재해율 3분의1 감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사는 승강기 과부하방지 장치와 낙하 방지장치, 화재 폭발 예방 환기 조치 등의 안전설비를 새로 구비하거나 교체했다. B사는 탁상용 드릴기와 드릴날 등에 방호 덮개를 설치하는 등 안전 사고 예방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드는 돈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원을 받았다. 산업안전공단 관계자는 "산재는 예방이 우선이고, 사고가 나더라도 재발 방지책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방 투자를 늘리면 안전사고는 줄게 돼 있다"고 말했다.

가장 빈번한 안전사고의 하나인 끼임 사고를 없애기 위해 사출성형기에 취출(제품을 꺼내는 작업) 로봇을 설치했다. 로봇을 설치하기 전(좌)과 근로자가 직접 꺼낼 필요가 없게 된 설치 후의 모습.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가장 빈번한 안전사고의 하나인 끼임 사고를 없애기 위해 사출성형기에 취출(제품을 꺼내는 작업) 로봇을 설치했다. 로봇을 설치하기 전(좌)과 근로자가 직접 꺼낼 필요가 없게 된 설치 후의 모습.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산재예방시설 자금을 지원받아 시설을 보강한 사업장의 재해율은 평균 30.8%나 뚝 떨어졌다. 이들 사업장은 주로 끼임이나 충돌사고가 많은 공작기계, 프레스, 지게차, 인쇄기 등에 대한 예방 시설을 확충했다.

또 안전통로 확보, 안전망 설치, 작업장 바닥 정비, 일체형 작업 발판(시스템비계), 화재·폭발·폭염 예방설비 작업만 해도 안전사고는 평균 25.7%나 줄었다. 산업안전공단은 이런 예방 작업에 매년 700억원 안팎을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클린사업장 조성 사업이다. 중소기업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산업안전 조치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설비 정비만 했는데도 재해율 확 낮아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설비 정비만 했는데도 재해율 확 낮아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사 관계자는 "우리 같은 소규모 기업은 거의 하청받아 생산하는데, 안전시설을 확충한 뒤 이미지가 좋아져 산재사고 뒤 끊겼던 하청 물량이 오히려 예전보다 늘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장 내부를 정비했는데, 근로자의 근무여건이 좋아졌다"며 "덩달아 생산성도 높아져 매출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안전사고의 80% 이상이 작은 기업에서 발생하는데, 이들 소기업에 중대재해법의 처벌 잣대를 들이대면 거의 문을 닫고 사라진다"며 "처벌 대신 정부와 지자체, 대기업 등이 손잡고 예방 작업에 나서면 생산성 향상과 같은 더 좋은 경제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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