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좌시하지 않겠다"더니…사학 면죄부 논란 휩싸인 조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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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서실음)의 사학비리 척결을 촉구하며 자퇴한 서실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지난해 6월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서실음)의 사학비리 척결을 촉구하며 자퇴한 서실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지난해 6월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한마디로 뒤통수 맞은 거죠. 교육청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학교 설립자의 회계 비리 의혹과 막무가내식 학사 운영 논란으로 지난해 60명이 넘는 학생이 자퇴한 서울실용음악고(서실음)의 학부모 김모(45)씨는 서울시교육청을 성토했다. 그는 “서울시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들을 배신했다”고도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7월 29일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의 사학비리 해결을 약속하며 올린 페이스북 글. [페이스북 캡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7월 29일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의 사학비리 해결을 약속하며 올린 페이스북 글. [페이스북 캡처]

서실음 학부모들이 말하는 ‘교육청의 배신’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약속과 관련된 것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7월 29일 페이스북에 서실음 학생들에게 사과의 글을 올렸다. 이례적으로 학교 이름을 공개하면서 “학생들의 소중한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서울시교육청은 회계 비리와 학사 파행으로 물의를 빚은 서실음에 종합시정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실음은 교육청이 인가한 대안학교로 지난 2018년 학교 설립자 장모 목사의 비리 혐의가 불거진 이후 수차례 시 교육청의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학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아 지난해 학생 60여명이 학교 정상화를 요구하며 자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육청이 비리 사학과 합의문 작성”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일동이 지난해 4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습권 침해 고발 및 서실고 정상화를 위한 교육청 적극개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일동이 지난해 4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습권 침해 고발 및 서실고 정상화를 위한 교육청 적극개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서실음 사태’에 사과한 조 교육감은 “이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종합시정명령 미이행 시 관계 법령에 따라 학교 폐쇄 등의 후속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더 이상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교육감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학부모들은 시 교육청이 학교 설립자와 작성한 합의문을 근거로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30일 작성됐다는 합의문에는 “설립자가 교육청과 교육청 직원들에게 제기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교육청이 학교 폐쇄 등의 행정조치를 유보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비리에 눈 감았다” 학부모들 반발

합의문 내용에 대해 자퇴생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자퇴한 학생의 학부모 강모(50)씨는 “조 교육감이 학교 폐쇄 조치까지 거론하며 엄정 대처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드디어 학교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며 “그런데 교육청이 본인들이 얽힌 소송 문제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가 결국에는 학교 측에 면죄부를 주는 합의를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조 교육감이 언급한 ‘종합시정명령 이행’이 합의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며 분노하고 있다. 당초 서울시 교육청이 학교에 요구한 ▶시설사용 장소 개선 ▶성비위 혐의자에 대한 신고의무 이행 ▶급식 위생·안전관리 운영 개선 ▶공익제보자에 대한 불이익조치 금지 등 14가지의 종합시정명령은 현재까지 제대로 이행된 것이 없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합의문에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로 사안을 적당히 마무리하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교육청,“남은 학생 보호해야”

학교 정상화를 위해 교육청이 서실음에 파견한 공무원 신분의 관선 교장은 지난해 말 사임해 교장은 공석이다. 이러한 와중에 서실음은 11일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 학부모 김씨는 “학생들의 집단 자퇴가 발생한 학교에서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신입생을 모집하는 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학교는 돈을 벌기 위해 막무가내로 나오고, 교육청은 이를 지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교육청 "남은 학생 보호위해 학교 폐쇄는 어려워"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교육청이 내린 종합시정명령 중 제대로 이행된 것은 없지만, 학교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학교 정상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신입생 모집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 사정으로 관선 교장이 사임했지만, 합의문에 따라 교육청과 기독교 교계에서 추천한 인원들로 공동 이사회가 꾸려진 만큼 학교가 정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폐쇄하게 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현재 남아있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교육청 입장에서 학교 폐쇄 조치를 내릴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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