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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서 배식하려던 그 학교…학생들 결국 집단자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학교 정상화 촉구 및 학생 법적조치 협박에 대한 이사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학교 정상화 촉구 및 학생 법적조치 협박에 대한 이사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강사 재계약과 학교 시설 활용을 두고 학생·학부모와 갈등을 벌여온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에서 학생 34명이 집단 자퇴했다. 학생들은 학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을 비판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 모인 서울실용음악고학부모 50여명은 "지난 9개월 동안 아이가 사랑하는 ‘서울실용음악고’의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왔다"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학교운영에 심한 무력감과 깊은 상처만 남았다"고 밝혔다.

최근 자퇴한 김수보군은 "사학비리를 처벌해 달라고, 학습권을 보장해 달라고, 수업에 사용하던 곳을 열어달라고, 식당에서 밥을 먹게 해달라고, 선생님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서울시교육청, 광화문광장 등에서 학교를 규탄하는 집회를 해온 학생들 중 현재까지 34명이 학교를 그만뒀다. 전학 간 학생도 10명에 달해 지난 3월 기준 175명이던 학생은 131명으로 줄었다. 2학년은 절반가량 그만둔 상황이다.

학부모·학생 "강사 재계약·시설 문제 해결 안돼"

지난 4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인도에 서울실용음악고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학교 운영 정상화와 전직 교원 재계약 등을 촉구했다. [서울실용음악고 학부모 제공]

지난 4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인도에 서울실용음악고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학교 운영 정상화와 전직 교원 재계약 등을 촉구했다. [서울실용음악고 학부모 제공]

서울실용음악고는 지난해 11월 시교육청이 감사한 결과 ▶회계 부당처리 ▶세출예산 목적 외 사용 ▶인건비 지급 부적정 ▶학교장 근무 불성실 등 16개 위반이 드러났다. 시교육청은 인건비 등 2억9970만원을 회수하고, 설립자인 장학일 당시 교감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3월에는 지하주차장에 급식실을 마련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여기에 항의하던 학부모와 교장이 모두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 현재는 콘서트홀에서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사학비리가 드러나며 불거지기 시작한 학부모가 중심인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 측의 갈등은 올해 초 강사 17명의 재계약이 불발되며 심화했다.

학부모 이승준(전 학교운영위원장)씨는 "학교 측이 선생님에게 지나치게 낮은 연봉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시교육청도 적절한 조건을 제시하도록 나섰지만, 학교는 전년과 같은 임금을 제시하고는 원치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급식을 하려던 서울실용음악고 지하주차장. 이가람 기자

급식을 하려던 서울실용음악고 지하주차장. 이가람 기자

학부모 측은 학교가 사학비리 문제를 지적한 강사들을 내보내기 위해 열악한 조건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서울실용음악고의 전 강사에 따르면 약 10년간 재직한 강사의 급여가 일반 교사 초임(2019년 기준 월 160만원)에 그친다.

성범죄로 입건된 학교 관계자가 학생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승준 전 학교운영위원장은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조사받고 있는 학교 관계자가 학생대표에게 접근해 교무실에 가자고 채근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학교 측 "학교 뺏으려는 시도…수업료 청구 소송 준비"

최근 서울실용음악고 전경. 이가람 기자

최근 서울실용음악고 전경. 이가람 기자

집단 자퇴가 일어났지만, 학교 측은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 운영권을 빼앗기 위해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송지범서울실용음악고 교장은 "사립학교 시간강사에 준하는 계약 조건을 제시했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몇 달째 문제 제기를 반복하면서 학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면서 "이미 자퇴한 상황에도 시위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학부모·학생들의 활동이 학교 운영권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이라고 주장한다. 송 교장은 "학부모 측이 교장을 자신들이 맡겠다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정상화를 막고 있다"며 "이미 자퇴했기 때문에 더이상 협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갈등이 시작된 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수업료에 대한 청구 소송도 예고했다. 송 교장은 "40여명의 학생이 현재까지 미납한 수업료가 4~5억에 이른다"면서 "수업료도 내지 않고 나간 사람들 때문에 운영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측은 서울시교육청에 대안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인가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실용음악고는 인가형 대안학교로 시교육청이 인가를 취소할 권한을 갖고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실용음악고 집단 사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교육청 측은 100여명에 이르는 재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가능성을 우려해 인가 취소에는 신중한 입장으로 알려졌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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