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생산 손잡을까…현대차, 애플에 답장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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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차,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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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미국 애플에서 온 편지에 대한 답장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10일 자동차·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애플과 현대차는 2024년께 미국 내 공장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30만대를 생산한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애플카’ 협업에 대해 현대차는 “아직 초기 단계로 결정된 게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는 득실 계산에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만대 협업” 제안에 계산 분분 #현대차 “아직 초기, 결정된 것 없다” #업계 “ODM 방식 손잡는 게 유리”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애플과 손잡는다면 전용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이른 시간에 전기차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갤럭시로 도약한 것처럼 현대차도 애플과 손잡고 전기차 시장에서 ‘제2의 갤럭시’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애플과 손잡더라도 대만의 스마트폰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처럼 생산기지에 그친다면 마진 1~2%를 챙기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현대차가 애플과 손잡는 게 유리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가 아니어도 누구든 (애플과 협력)할 것이기 때문에 잠재적 경쟁자를 줄인다는 점에선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관건은 협력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애플이 전기차 전용플램폼 등 품질과 양산 능력을 갖춘 파트너를 를 찾고 있다면 현대차만 한 적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애플은 아이폰 제작방식처럼 생산 플랫폼을 보유한 업체와 협력·생산하는 제조자 설계생산(ODM)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전기차를 출시할 경우 첫 번째 시장은 자국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앨라배마·조지아에 각각 37만대, 34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차 공장을 갖고 있다. 두 곳 모두 전기차 전용 라인을 증설할 수 있다. 새 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기존 공급망을 이용해 발 빠르게 미국 전기차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 애플과 중국 전기차업체와의 협력설도 나왔지만, 가능성은 작다. 고태봉 센터장은 “미·중 무역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이 중국과 손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애플과의 협력 형태 중 현대차의 역할이 ODM으로 굳어질 경우 애플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 애플에 주도권을 내준다면 애플의 앞선 기술·디자인과 품질관리를 통해 전기차 영토를 넓히려는 현대차의 전략과 어긋날 수도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통한 윈윈이 돼야 한다”며 “그러려면 현대차가 기술제휴 면에서 내놓을 ‘슬랙(여유 자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현재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간 논의는 태핑(수요조사) 수준”이라며 “된다고 해도 임팩트에 대해선 보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애플 동맹설 후 미국의 투자회사 웨드부시 시큐리티의 댄 이베스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독자적으로 차를 출시할 가능성은 35~40%”라며 “첫 번째 스텝은 파트너를 정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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