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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에 어린이가 어딨나” 체육시설 아동ㆍ학생 교습 허용에 쏟아진 분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태영 휘트니스에서 정태영 씨가 정부 방역조치의 형평성을 주장하며 조명을 켜놓고 자리를 지키는 '오픈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태영 휘트니스에서 정태영 씨가 정부 방역조치의 형평성을 주장하며 조명을 켜놓고 자리를 지키는 '오픈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학생이 몇 명이나 오겠어요. 그냥 열어주는 척, 입막음용 대책 같아요.”

경기도에서 헬스·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는 정이진(36)씨는 7일 정부의 방역 대책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오전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그동안 운영 금지됐던 모든 실내체육시설에 대해 8일부터 운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태권도장 등 일부 실내체육시설에 대해 9명 이하 교습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형평성 논란이 일자 내놓은 조치다. 다만 시설 이용 가능 대상은 만 19세 미만 아동ㆍ청소년과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으로 제한된다. 동시간대 수용 인원도 9명 이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씨는 “그냥 태권도장 허용 기준과 맞추기 위해 낸 대책이라고밖에 안 보인다. 같은 실내체육시설인데 기준도 없고 형평성도 맞지 않다 보니 편 가르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초 집합금지 시설에 대해 지자체가 운영중단을 ‘권고’를 했을 때도 방역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문을 닫았는데 돌아온 건 국가지원금 30만원”이라며 “그동안 꾹 참던 헬스장 관장들이 오죽하면 다 밖으로 나오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면적당 인원 아닌 9명 고정 “이해 안 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4일부터 수도권에서 2.5단계로, 비수도권에서 2단계로 2주간 연장된 가운데 집합금지 시설에 해당하는 헬스장 업주들이 정부 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체육관을 열고 공동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4일 오후 서울의 한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4일부터 수도권에서 2.5단계로, 비수도권에서 2단계로 2주간 연장된 가운데 집합금지 시설에 해당하는 헬스장 업주들이 정부 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체육관을 열고 공동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4일 오후 서울의 한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PT(Personal Training) 샵을 운영하는 황재은(31)씨는 ‘아동ㆍ학생 9명 이하’로 제한한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성인을 포함해 9명이라고 하면 그나마 이해했을 것 같은데 PT 샵을 이용하는 아동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우리 매장은 70평 정도 돼 과거 구청에서 면적별 수용 가능 인원이 23명이라고 정해줬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는 시설 면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9명으로 고정해버려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필라테스 센터 운영 중인 김모(31)씨도 “매달 대출이자와 원금만 300만원이 들어간다. 생계가 달린 문제라 하루하루 목이 졸리는 기분인데 무슨 근거로 아이들은 되고 어른은 안된다고 하는지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애초에 줌바·에어로빅 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나와서 실내 체육시설이 무더기로 집합 금지된 건데, 필라테스는 격렬한 운동도 아니지 않냐. 나와서 직접 보고 위험도를 따져서 막는 거라면 이해를 하겠다. 30평짜리 센터에서 1:1, 1:2 수업하는 것도 안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방역 수칙 조정 기준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오성영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은 정부 발표가 전해지자 자신의 SNS를 통해 “헬스장 이용객 99%가 성인”이라며 “이러려고 이 엄동설한에 피 말라 죽어가는 관장님들이 울면서 하소연한 줄 아느냐”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굶어 죽어가는 자영업자들 10일 국회에서 다 같이 만나자”고 덧붙였다.

전문가 “핀셋 방안 내놓다가 누더기 됐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헬스클럽관장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헬스클럽관장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방역 당국의 이번 대책이 기준과 근거가 모두 불명확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실내 스포츠 중에서도 비말이 튀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대책을 내놓은 셈”이라며 “샤워시설 제한이나 이용 가능한 운동기구를 분류하는 등 구체적인 수칙을 주고 이를 안 지켰을 때 페널티를 감수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9명으로 단일하게 숫자를 조정하는 것보다 단위면적당 입장하는 숫자를 제한하는 게 가장 공평하다”고 설명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 기준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핀셋 방안이라고 내놓고 있는데 누더기가 되는 상황”이라며 “이 사람들은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인 만큼 해당 업주들과 상의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벌써 1년 가까이 이어왔기 때문에 이 정도 단계에선 위험도가 얼마이고 어떤 매장의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신뢰만 잃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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