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착오' 식물인간 … 병원, 3억여원 손배소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난 99년 2월 당시 출생 만 11개월이었던 박모(4)군이 고열에 구토와 활동력 감퇴, 경기 등의 증세를 보이자 아버지 박모(35)씨와 박씨의 부인(34)은 박군을 데리고 인근 소아과를 찾았다.

당시 의사는 박군의 혀와 잇몸에 염증이 있는 것을 보고 구내염으로 진단, 이틀치 약을 처방했으나 박군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박씨 부부는 사흘 뒤 다른 병원을 찾았다가 박군이 뇌수막염으로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종합병원인 D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주간 담당의사였던 A씨는 다시 구내염으로 진단하고 박군을 입원시켰다.

그날 밤 박군이 두 차례나 경련을 일으키자 같은 병원의 야간 당직의였던 B씨는 그날 낮 병원에서 실시한 박군의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한편 뇌척수액을 채취, 검사한 뒤에야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최종 진단했다.

결국 박군은 뇌수막염을 치료했지만 후유증으로 사지가 마비된 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됐고 지난 1월에는 9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하상혁 민사3단독 판사는 22일 박씨 가족이 이 병원과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박군에게 2억9천600여만원을, 박씨 부부에게는 1천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입원 사흘 전부터 뇌수막염을 의심할만한 임상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그 전에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구내염으로 진단, 처방했으나 열이 가라앉지 않아 뇌수막염 검사를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구태의연하게 구내염으로 진단했다"며 "의료진의 과실로 박군에 대한 뇌수막염의 진단과 치료가 지연됐고 이로 인해 박군이 심한 뇌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박군이 걸린 폐구균에 의한 뇌수막염의 경우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는 정도가 40%에 이르는 점 등을 감안, 피고들의 책임을 7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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