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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처럼 췌장 파열로 숨진 교사…법원은 ‘살인’ 인정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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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양의 양부모가 EBS 입양가족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장면.[사진 MBC]

정인양의 양부모가 EBS 입양가족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장면.[사진 MBC]

입양된 후 271일 만에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양의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정인양과 같은 증상으로 교사를 숨지게 한 40대 남성에게 살인죄를 인정했다.

4일 검찰 등에 따르면 정인양의 사망 원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다.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 손상과 복강 내 출혈 등 복부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전문가는 췌장 절단에 주목했다. 정경원 아주대학교 외상외과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췌장은 우리 배 속 장기 중 뒤쪽에 있다”며 “앞에 있는 장기들을 뚫고 췌장까지 힘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외력이 척추에까지 맞닿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3세 아동의 췌장이 파열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리력이 가해져야 하는지 양모와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상대로 한 실험.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3세 아동의 췌장이 파열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리력이 가해져야 하는지 양모와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상대로 한 실험.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제작진이 정인양에게 가해졌을 폭행의 정도를 추측하기 위해 벌인 실험에서 양모 장모씨와 비슷한 체격의 여성이 췌장 파열이 가능할 정도의 물리력 수치를 얻기 위해서는 바닥에 쿠션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장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동학대치사는 살인의 고의는 없었지만 실수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적용된다. 살인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양모가 정인양을 사망하려는 의도가 있었거나, 최소한 ‘이렇게 때리면 사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폭행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아동학대치사와 살인은 양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치사의 경우 기본 4~7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한다. 반면 미성년자 살인죄는 기본이 징역 20년 이상이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도 있다. 가중 요소가 인정될 경우 무기 이상, 즉 사형 선고도 가능하다.

종교 관계를 악용해 20대 여교사를 살해한 김모씨. [사진 제주경찰청]

종교 관계를 악용해 20대 여교사를 살해한 김모씨. [사진 제주경찰청]

이와 관련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지난해 초등학교 여교사 A씨(27)를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48)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과 교회에서 알게 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헌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자신의 생활비로 충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중 구타당해 췌장 파열과 복강 내 출혈로 사망했다.

김씨는 법정에서 “폭행과 살인은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씨가 자신에게 벗어나려는 것을 못 참고 죽을 정도로 가혹한 폭행을 했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인양을 숨지게 한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는 4일 “정인이의 피해,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는 건 잔혹한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며 “이것이 어떻게 과실에 의한 사망이 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은 정인양의 부검 재감정을 의뢰했다. 검찰은 법의학자들의 재감정 결론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오는 13일 열리는 첫 재판기일에서 살인죄를 적용한 공소장으로 변경할지 검토 중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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