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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다가오자, 인도·태평양에 발담그는 유럽···왜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신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럽 동맹국들이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더 깊이 발을 담구는 모습이다.

英 항모 띄우고, 獨 호위함 보내 #유럽발 '아시아 회귀' 본격화하나 #먼 유럽서도 오는데, 韓 선택은…

연합훈련을 강화하는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독일도 새해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기로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패전 이후 아시아에서 군사적인 움직임을 자제해온 독일의 행보를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영국은 올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을 보내기로 했다. 사진은 퀸 엘리자베스 항모에서 F-35B 스텔스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영국은 올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을 보내기로 했다. 사진은 퀸 엘리자베스 항모에서 F-35B 스텔스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이처럼 유럽의 관여가 깊어질수록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를 망설이고 있는 한국의 부담도 더 커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인·태는 '브렉시트' 탈출구

유럽 각국은 경쟁하듯 국가전략 차원의 인도ㆍ태평양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프랑스가 가장 먼저 관련 정책보고서를 냈다.

누구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정책 구상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양과 태평양에 자국령 섬들을 가진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힘의 투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위로 F-35B 스텔스 전투기가 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위로 F-35B 스텔스 전투기가 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의 보수당 정권은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미국ㆍ일본ㆍ호주 등과 계속해오던 군사협력도 강화할 방침이다. 올해는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전단까지 보내기로 하고 일본 등과 물밑 협상을 가졌다.

◇'인·태' 원조, 독일의 행보

독일은 지난 9월 ‘인도ㆍ태평양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보고서에서 “미·중 갈등에 대한 대응”이라고 적시했다.

당시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40%가 이 지역에서 창출되고 있다”며 “이 지역의 갈등으로 인해 지역 내 안전과 안정이 위협을 받는다면 결국 독일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그간 자제하던 군사적인 움직임도 시작할 태세다. 올해 호위함 1척을 남중국해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독일은 올해 남중국해에 호위함 1척을 파견할 예정이다. 사진은 독일 해군의 아우구스부르그 호위함이 작전을 마치고 모항으로 돌아가는 모습. [EPA=연합뉴스]

독일은 올해 남중국해에 호위함 1척을 파견할 예정이다. 사진은 독일 해군의 아우구스부르그 호위함이 작전을 마치고 모항으로 돌아가는 모습. [EPA=연합뉴스]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협력국과 함께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런 독일의 구상과 관련, 데이비드 캄록스 전 파리정치연구소 소장은 최근 동아시아포럼 기고문에서 “1924년 칼 하우스포퍼(주일 무관 등 역임)가 ‘인도ㆍ태평양’이란 지정학적 개념을 처음 만든 이래 한 세기 만에 다시 이 지역에 관여하는 움직임”으로 평가했다.

이외에 네덜란드도 지난 11월 인도ㆍ태평양 관련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핀란드는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난 8월 주일 대사관에 무관을 파견했다. 주변 군사 정세를 파악하는 등 큰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화두는 '범 대서양 동맹' 복원

유럽 주요국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마치 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의 미국을 떠올리듯 유럽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민주화시위와 대만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이 누적되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의 우려가 그만큼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실제로 유럽 내 반중 정서는 확대일로다. 지난 10월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감이 크게 높아졌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에선 반감 비율이 모두 70%를 넘어섰다. 반면 호감도는 20%대로 낮다.

세계 주요국의 중국 호감도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세계 주요국의 중국 호감도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트럼프 시대가 저물고 ‘동맹 강화’를 내세운 바이든 시대가 다가오면서 유럽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는 풀이도 나온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가 전통적인 ‘범 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의 복원을 상징하는 것이란 얘기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에서 범 대서양 동맹 강화를 촉구하는 보고서가 증가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나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연구보고서 '동반 강화: 범 대서양 전력 활성화 전략(Stronger Together : A Strategy to Revitalize Transatlantic Power)'이 대표적인데, 바이든의 핵심 참모인 니콜라스 번스 전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또 다른 포석도 엿보인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권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둔 미군 감축 압박에 시달려온 독일 등이 선제적으로 제스처를 취하는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훨씬 비용이 덜 드는 연합훈련 등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한다는 이미지를 내세워 향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먼 유럽, 가까운 한국

다만 유럽은 지리적으로 인도ㆍ태평양에서 멀다. 이와 관련, 최근 포린폴리시는 미ㆍ중 경쟁을 복잡한 ‘3차원 체스’에 비유하면서 “지정학에 바탕을 둔 전략적인 연합체에서 나토 회원국은 남중국해 및 대만해협에서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너무 떨어져 있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일본ㆍ호주에 더해 한국ㆍ필리핀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매체는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선 “중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으면서도 한반도를 넘어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넓히려는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 요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워싱턴과 베이징이 두는 인도ㆍ태평양이란 체스판 위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판단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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