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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여” “의사 행세”···한의사 현장 투입 놓고 ‘삼각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한 의료인이 시민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한 의료인이 시민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의사도 코로나 대응에 참여하게 해달라.”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가 지난 29일 낸 호소문의 요지다. ‘1060명 한의과 공중보건의가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단체는 “코로나가 장기화함에 따라 의료진 부족이 심해지고 확진자 역학조사와 선별진료소 검체 채취도 지연되어 국가적으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의과 공중보건의도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역학조사·검체채취 등 의료인으로서 어떤 역할이든 코로나 대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료계 내에서 한의사의 현장 투입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 논란이 된 한의사의 검체 채취와 역학조사 업무에 대한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공중보건한의사 “코로나19 대응 함께”

서울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가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중랑구 동부제일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서울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가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중랑구 동부제일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현재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검체 채취가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에 해당할 우려가 있어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으로 한의사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공중보건한의사들은 “검역법은 한의사 또한 검역감염병의 관리 주체가 되는 의료인임을 명시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코로나 진단검사와 역학조사 업무 보수교육도 이수했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빌미로 의사 행세하려는 꼼수”

호소문이 공개되자 의사들 사이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의사들이 의사 행세를 하고 싶어 코로나까지 이용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가위기 상황에서 한의사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며 “그러나 검체 채취 등은 엄연히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균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을 한의사들이 진맥으로 진단하겠다는 것이냐”며 “코로나19로 위중한 시기를 틈타 의사 행세를 하려는 꼼수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의협 관계자는 “의사와 한의사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다른 면허를 가지고 있다”며 “법에 명시된 ‘진단’은 현행 의료법에 따른 면허 범위 내에서의 의료행위로 제한되어야 함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부,“역학조사는 가능, 검체 채취는 신중”

코로나19를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 간의 갈등은 지난 3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할 당시 한의계는 의료인력으로 한의사 투입을 촉구했지만 방역당국은 “예상치 못한 갈등과 법적 책임 소재가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중보건한의사 73명의 대구 의료지원 파견이 무산됐다.

최근 정부는 역학조사 업무에 대해서는 한의사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지난 4일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공중보건한의사의 역학조사 업무 투입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한의사라도 역학조사 업무는 할 수 있고 감염병 예방법에 규정이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필요한 경우 충분한 협의를 거쳐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검체 채취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자 한의계는 “애매한 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편수헌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회장은 “이미 91명의 공중보건한의사가 경기도에서 검체 채취 업무를 맡아 코로나19 대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에 검체 채취 실습도 있고 법적으로 금지 규정이 없음에도 방역당국은 입장 표명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편 회장은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1060명의 공중보건한의사도 의료인으로서 방역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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