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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ife] 김서령의 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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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고추를 따오던 텃밭을 여태도 가꾸고 있는 사람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와선재(蝸善齋)'의 주인 최환상(47.사진)씨는 그런 드문 행운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절로 굴러온 행운은 아니다. 오랜 고민의 결과다. 그리고 아직도 그 고민에서 완전히 해방되진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뀐다니까요"라고 안타깝게 고백한다.

와선재에 가면 인간에게 집이 과연 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안식을 주는 주거지라기보다 집값과 땅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현실을 새삼 탄식하게 된다. 방송작가 최환상씨는 지난해 분당구 궁내동 옛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 떠난 지 27년 만이다. 선친이 손수 지은 집이고 자신이 개구쟁이 시절 땅따먹기를 하고 놀던 앞마당이다. 서울 근교 한적한 농촌이던 고향마을은 이제 다가구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복잡한 동네로 변해버렸다. 다니던 초등학교는 그대로 있는데 그 곁에 초고층 아파트가 화려하지만 사납게 들어서 버렸다. 그 가운데 섬처럼 최환상씨의 옛 집이 동그랗게 남아 있다.

그는 정갈한 흙마당과 얌전한 툇마루를 거느린 열다섯평짜리 옛집을 차마 헐어버릴 수 없었다. 비싼 값을 주겠다고 자꾸만 부추기는 땅장사에게 팔아넘길 수도 없었다. 옛집에는 홀로 되신 늙은 어머니가 살고 계셨다. 평생을 거기서 살아오신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를 '편하게' 서울의 아파트로 모셔온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암만 생각해도 자기들의 편리이지 어머니의 편리일 리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두어해전부터 치매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문을 나서 어디론가 자꾸만 사라져 버리셨다. 몇 번 어머니를 잃어버리면서 최환상씨는 결심을 한다. 우리가 내려가자. 내려가서 애들을 고향집에서 키우자.

집은 삼대가 모여살기엔 비좁았다. 현대식 주거에 길들여진 아내와 아이들에게 일상의 편리를 포기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궁리 끝에 집을 새로 짓기로 했다. 허물지 않고 덧대어서 짓는다면? 어머니와 아이들의 공존, 옛날과 지금의 화해, 현대와 전통의 조화,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화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와 치밀한 솜씨를 가진 설계자 물색에 나섰다. 누가 김효만(이로재건축.02-766-1928)씨가 지은 일산 '임거당'이 좋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얼른 찾아가 봤다. 딱 마음에 들었다. 김효만과 최환상은 그로부터 흉허물없는 술친구가 되었다. 둘의 머릿속에 있던 집 모양은 점점 구체적인 꼴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집은 옛 기와집을 중심으로 달팽이 같은 나선형을 그린다. 어머니의 생활공간인 한옥을 빙 둘러싸고 아랫세대의 양옥집이 놓인 꼴이다. 새집의 부엌 모퉁이는 한옥의 대청마루와 이어져 나선형의 연결고리를 이룬다. 유리가 많은 현대식 집은 어느 위치에 서든 한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당당한 검회색 기와지붕과 대빗자루 자국 선명한 흙마당과 뜰 안의 고요를 응축한 감나무 한 그루까지….

거실에 앉아 무심코 앞마당을 내다보고 있는 동안 몸이 호리호리한 어머니가 소리없이 고무신을 신고 마당에 내려서신다. 망설임없이 대문께까지 걸어나가신다. 최환상씨도 소리없이 대문 앞으로 달려나간다. 아들이 어머니를 정답게 막아선다. 어머니는 금세 외출을 포기한다. 자신이 평생을 아침마다 대빗자루로 쓸어낸 마당을 거쳐 평생 물걸레질을 해온 대청을 거쳐 평생 수만번도 더 잡아 반질거리는 문고리를 잡고 얌전하게 당신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이 고요한 풍경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다. 그러면서 와선재가 왜 와선재인지를 이해했다. 집에 왜 이렇게 유리창이 많은지, 풍경이 왜 이렇게 정갈한지, 내후성 강판에 슨 붉은 녹이 왜 이렇게 고운지. 와선재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어머니의 한옥이다. 한가족의 평생의 역사가 무르녹은 현장이다.

당호에 대해 말할 때 최환상씨는 의외로 다변해졌다. 왜 와선재인지 알 것 같다고 했더니 "집이 달팽이 모양으로 생겼다고 '와(蝸)'자를 넣었지만 '선(善)'은 우렁이의 성질에서 따온 겁니다. 우렁이나 달팽이나 같은 과니까... 우렁이란 놈은 환경이 나빠지면 제 몸 안에 알을 낳아 알이 어미 살을 파먹고 자란다지요. 어미가 살을 다 파먹히고 껍데기만 남아 물에 둥둥 뜨니까 새끼들이 우리 엄마 혼자만 뱃놀이한다고 섭섭해하더라나요. 결국 인간도 제 부모를 파먹고 자라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라는 그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서울전망대' 같은 프로의 대본을 쓰는 방송작가다. 그리고 우렁이의 나선형 맨 안쪽에 어머니를 모셔놓고 식구 중의 누군가가 늘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산다.

족이 파괴되고 세대 간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건 어쩌면 옛집을 마구 허물어버려 그런 건 아닐까요? 가족사의 기념비적 유물인 집을 금전 가치로만 따질 수는 없었어요. 저는 지금 꿈꿉니다. 제가 부모님의 집에 한바퀴를 더 돌렸듯이 나중 제 아들이 여기다 또 한바퀴를 더 돌려주기를. 하하." "와선재가 온 분당을 다 차지하겠는데요?" "하하..물리적으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그러기를 바랍니다." 집짓느라 너무 힘이 들어 기운이 소진했다면서도 그는 자주 하하 웃는다.

와선재는 내후성 강판이란 특수한 합금소재로 바깥벽을 마감했다. 금방 녹이 슬어 발갛게 변하는 금속이다. 그렇지만 일정한 두께의 녹이 생긴 후엔 이 녹이 속의 금속을 보호한다. 세월이 가도 덧칠할 필요가 없어 경제적이고 녹빛깔이 건물 이미지에 중후한 깊이와 품위를 얹어 준다. 자연에서 나온 이 녹빛과 흙으로 구운 기와지붕과 목재의 나뭇결과 이파리의 초록빛은 서로 감탄할 만큼 조화를 이룬다. 김효만 건축의 특징은 여러 개의 작은 마당인데, 이 집에도 줄잡아 일고여덟개의 자그만 뜨락이 있다. 자칫 공간의 낭비 같아 보이는 이 뜨락은 집을 다채롭고 리드미컬하게 변주한다.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대나무가 심어진 뜰, 곧고 키큰 대나무 사이로 비쳐 들어온 햇살이 흰 벽에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그림을 그려놓는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 때 눈앞의 작은 대밭이 주는 의외의 기쁨에 집주인은 여러 번 놀라곤 했다.

거실과 부엌을 거쳐 한옥으로 나가면서 나 또한 찬탄했다. 유리창 양편으로 보이는 뜨락의 변화라니! 잔디가 심어진 뜰, 야생초가 소복이 자라는 뜰, 자잘한 자갈이 깔린 뜰, 귀족적인 몸매의 자작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뜰. 집이 구부러져 시점이 달라질 때마다 성질이 다른 아름다움이 눈앞에 나타났다. 벽의 모양도 달라졌다. 녹슨 철판이 보이다가 흙담장이 드러나다 침착한 드라이비트 벽면이 나타났다. 그냥 뜰이거나 벽면이라기보다 눈맛을 즐길 수 있게 배려한 설치 미술품처럼 다양한 재미를 준다. 새집은 아래층이 가족 공동 공간이고 2층에 고1 딸과 중3 아들을 위한 공부방과 부부침실이 있다. 옛 한옥에 있던 자그만 방은 어머니방과 집주인의 서재로 사용 중이다. 원래 한옥에 딸려 있던 땅이 1백70평, 새 건물은 50평으로 지었다. 건축비(3억원 남짓)는 살고있던 잠실의 작은 아파트를 판 돈으로 빠듯하게 충당했다. 집에 대한 생각은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팔고 나니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라"고 말하면서 남과 다른 길을 선택한 와선재 주인은 다시 하하 웃었다.

김서령 생활 칼럼니스트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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