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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 50여 명 확진됐지만, 신생아 감염은 한 건도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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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생님, 아기는… 아기는 괜찮나요.”

의사들, 레벨D 방호복에 장갑 세겹 #음압 격리 수술실 마련해 출산 도와 #해외선 아기에 전파 사례 다수 나와

지난 19일 경기도의 한 병원 음압 격리 수술실. 아기를 갓 출산한 산모 A씨(29)는 흐느끼며 아기의 상태부터 물었다. 아기는 힘찬 울음소리로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에 답했다. 의료진은 “아기는 건강하다”고 알렸다.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평범한 산모들이라면 출산 직후 갓난아기를 가슴에 품고 젖을 물리지만 A씨는 그런 감격의 순간을 누리지는 못했다.

A씨와 아기는 각각 격리 병실로 옮겨졌다. 아기에 대한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두 번 모두 음성. 아기는 감염되지 않았다. A씨는 “출산 예정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며 “건강하게 출산하도록 도와주신 의사·간호사 선생님들께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A씨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아기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A씨처럼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에서 출산한 산모가 50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엄마의 태반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돼 태아에게 수직 감염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엄마의 바이러스에 노출된 아기가 며칠 만에 사망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달랐다. 곽진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관리팀장은 “현재까지 국내에선 신생아가 임신·출산 과정에서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신생아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은 건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대구파티마병원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봄 3개월간 코로나19 산모 전담 병동을 운영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산모, 자가격리 중이거나 의심 증상이 있는 산모 15명이 이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이 병원의 박학렬 산부인과 과장은 지난 2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 산모의 출산을 성공시켰다. 박 과장은 “임신 중이기 때문에 해열제 등을 쓰며 증상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하고 출산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산부인과·마취과·소아과·호흡기내과·감염내과 전문의가 출산을 돕기 위해 뭉쳤다. 음압 격리 수술실을 마련하고 수술 직후 산모와 아기를 추가 접촉 없이 격리 병실로 옮기는 동선도 세밀하게 짰다. 그리고 임신 38주째인 2월 23일 제왕절개 수술로 새 생명을 맞기로 했다. 박 과장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라 병에 대해 알려진 게 많지 않았다. 아기와 의료진 감염 모두 걱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방역만 잘하면 문제없다고 서로 격려했다”고 말했다.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장갑을 세 겹 착용해 움직임이 둔해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했다. 1시간여 수술 끝에 아기가 태어났다. 그는 “아기 검사를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며 웃었다.

전남대병원도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감염·의심 산모 처치에 대한 프로토콜을 준비한 덕분에 지난 10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산모의 출산에 성공했다. 수술을 이끈 김종운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 입원이 결정된 뒤 산부인과·소아과·마취과 등 관련 부서의 실무자들이 단체 대화방을 개설하고 산모 상태 변화에 따른 대처가 동시에 전달되도록 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수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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