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한의학자, 사상의학 과학성 입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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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의학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논문이 국제적인 의학학술지에 게재된다.

19세기말의 대의학자 이제마(李濟馬) 선생이 제창한 사상의학은 인간의 체질이 태양, 태음, 소양, 소음 등 4종류로 대별되며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는 이론. 사상의학은 국내 한의학자들에게는 고전적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국제학술지에 객관적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하는 논문이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인 채한 박사(한의학)는 자신이 대표집필한 논문 '개별화된 의학을 향한 대안적 방안: 사상 분류학의 심리적ㆍ육체적 특성'이 전문 학술지 '대체.상보(相補)의학 저널(Journal of Alternative & Complementary Medicine)' 8월호에 게재된다고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 뉴욕에서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이 학술지는 과학정보연구소(ISI)의 과학논문 인용색인(SCI)에 등재된 전문 학술지로서 기존 의학이 다루지 못하는 대안 이론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채 박사는 사상의학의 과학성을 판단하기 위해 미국 대학생 79명을 체질별로 분류한 뒤 경희대 한의학과가 개발한 121개 문항의 체질판별 문항 조사법을 동원해 신체적 특징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칼 융의 심리학에 의거한 95개 문항의 심리 검사법을 이용해 조사 대상자의 심리적 특성도 파악했다.

조사 결과 4대 체질은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차이를 보여 각자 다른 체질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구체적으로 "소양인과 소음인은 신체 특징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대립되는 특성을 보였으며 태음인은 다른 체질보다 체중과 체지방량이 유의하게 많았다"고 이 논문은 지적했다.

논문은 특히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부작용을 우려해 판매 제한을 검토하고 있는 한약제 마황(馬黃)이 체질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될 경우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마황은 수천년 동안 한의학에서 사용해온 약제로 감기, 몸살, 기관지염, 천식 등에 광범위하게 처방되고 있다. 그러나 마황이 체중감소 목적이나 마약의 대용품으로 남용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보고됐고 FDA는 판매 제한을 고려해 왔다.

채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사상의학이 의학, 심리학, 철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체계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다"면서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지금까지 무시됐던 기초의학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 박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국군 특수전사령부 한방과장과 한국 한의학연구원의 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하버드 의대 방문 연구원으로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접목을 위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는 채 박사 이외에도 류인균 서울대 의대 정신과 임상의학 연구소 교수와 이수진 미국 매클린 병원 뇌영상센터 연구원, 신민규 경희대 한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주임교수 등이 참여했다.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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