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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총장 몰아내기, 법치주의가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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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위기에 두 차례나 손을 내민 건 법원이었다. 지난 11월 사상 처음 직무정지를 당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며칠 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낸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인용해 준 덕분이다. 법무부 장관의 직무정지 명령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이유다. 전국의 고검장 이하 검사들도 한숨 돌렸다. 장관에게 명령 철회를 집단으로 요구한 그들이 조직이기에 빠져 개혁에 저항한 게 아니라고 당당하게 항변할 수 있다.

정치 행보란 여유로울 때의 놀음 #윤 총장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까 #국민 성원 끌어내 난관 돌파할 것

법원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며,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라는 헌법 가치를 근거로 삼았다. 지휘·감독을 빙자한 수사 간섭으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협할 때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검사들의 바람막이라는 역할 때문에 장관과의 관계설정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총장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줬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라는 판시는 그래서 울림이 컸다.

장관과의 갈등을 자초한 건 윤 총장이다. 작년 언론에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비리가 불거지자 민심이 들끓는 걸 보고, 도저히 덮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게 발단이었다.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직전에 수사를 강행한 윤 총장에겐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처하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곧이곧대로 믿다 보니 그 길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라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화들짝 놀란 여권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검찰을 통제하라는 밀명이 장관에게 내려왔으리라.

통제는 전방위적이었다. 선출된 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 논리를 들이대며, 법상 가능한 수단이 모두 동원됐다. 장관의 지휘권 발동, 감찰조사 직무정지 명령, 징계청구 등으로 이어졌다. 전 정권의 적폐청산이나 전직 대통령 단죄 등을 밀어붙이며 윤 총장에게 환호한 게 엊그제 같은데 ‘공룡 검찰’이라 비난하며 괴물 취급을 한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도 선을 그은 게 법원이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의 행사는 민주적 통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만으론 부족하다고 본 걸까. 언젠가부터 ‘윤 총장 몰아내기’로 방향을 돌렸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에서 청와대의 조직적 가담까지 파헤치려 했으니 그냥 둘리 있겠는가. 거기에 뜻밖의 변수가 가세했다. 수사를 빙자해 정치를 한다는 프레임을 씌워 윤 총장을 압박하는 게 정권을 향한 수사를 저지하려는 꼼수라는 걸 눈치채고 민심이 돌아선 결과, 일부 조사기관의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당 유력주자를 앞질렀다.

정치 행보란 여유로울 때 벌이는 놀음 아닌가. 정권에 맞서는 윤 총장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까.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더구나 장관 주도의 몇 차례 인사에서 측근이 모두 좌천되거나 잘리지 않았는가. 진행 중인 여러 가닥의 수사를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할 절박한 처지인 그의 손에는 남은 카드가 별로 없다. 결국 국민의 성원을 끌어내 난관을 돌파하려 하지 않겠는가.

몰아내기는 갈 데까지 갔다. 장관의 징계청구에 따라 ‘정직 2개월’의 처분이 내려졌고, 다시 직무에서 떠난 윤 총장은 또 다른 가처분신청이 인용되어 며칠 안에 복직했다. 징계 절차가 위법하고 사유가 부당하다는 주장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거다. 이에 환호하는 국민이 많지만, 진영 논리에 빠져 윤 총장에게 대권을 노린 정치 행보를 당장 멈추고 사퇴하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월성 원전의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등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 행보가 아님을 보여주려면 재판 결과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공수처가 곧 출범한다. 수사 대상으로 몰려 또다시 압박할 것이다. 진행 중인 권력형 비리사건의 대부분을 넘겨받을 그들은, 능력 부족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오면 애초 말이 안 되는 수사를 벌였다고 덮어씌울지 모른다. 수사 관련 불만이 검사에 대한 고소·고발 형식으로 공수처에 쇄도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윤 총장의 입지를 흔들 것이다.

비이성적인 발악 수준의 사퇴 압박이 오더라도 버텨야 한다. 임기를 방패 삼아 바람을 막아주는 총장다운 총장을 모시고 일한다는 검사들의 자부심을 꺾어선 안 된다. 법치주의를 지키려고 윤 총장에게 두 번이나 제자리를 찾아준 법원에도 보답해야 한다. 권력의 폭주에 맞서는 윤 총장에게 성원을 보내는 국민에게, 법치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