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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B 토크] 히어로즈에게 야구는 ‘그깟 공놀이’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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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해 2월 스프링캠프 기간 중 열린 히어로즈 자체 청백전에 유니폼을 갖춰 입고 투구하는 허민 의장. 히어로즈는 창단 이후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스프링캠프 기간 중 열린 히어로즈 자체 청백전에 유니폼을 갖춰 입고 투구하는 허민 의장. 히어로즈는 창단 이후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연합뉴스]

2008년 해체한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모체로 만들어진 히어로즈는 출범 당시부터 삐걱댔다. 가입금 120억원 중 일부를 미납해 KBO와 충돌했다. 운영비가 모자라다며 주요 선수들을 팔아치웠고, 이면계약을 통해 12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131억 5000만원의 뒷돈을 챙겼다. 이 돈의 일부는 ‘인센티브’ 명목으로 이장석 전 대표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KBO 이사회, 히어로즈 징계 #연습경기서 볼 던진 허민 의장 #품위 손상으로 직무 정지 2개월 #팬 사찰 혐의는 추후 징계 불가피

재미교포 사업가인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과 송사도 있었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홍 회장에게 지분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총 20억원을 투자받았으나, 약속한 지분을 넘겨주지 않았다. 결국 2018년 사기·횡령·배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KBO는 이 전 대표에게 영구 실격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엔 ‘옥중 경영’ 혐의가 포착됐고, KBO가 지난해 11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올해 3월 KBO는 4개월의 조사 끝에 구단에 제재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하송 당시 대표이사와 김치현 단장에겐 엄중경고했다. 실효성이 없는 징계에 실망한 팬들은 엄중경고 대신 갓(God·신)이란 단어를 붙여 ‘갓중갓고’라는 반어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히어로즈는 상벌위에 회부됐다. 지난해 6월, 2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원인이었다.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이 주인공이었다. 너클볼을 배워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기도 했던 허 의장은 선수들을 타석에 세우고 공을 던졌다.

허 의장은 수감중인 이 전 대표를 대신해 사실상 구단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지시를 거스를 선수는 없었다. 얼마 후, 이 영상은 보도를 통해 팬들에게 전달됐다. ‘갑질’ 논란이 일었으나 이번에도 중징계 없이 넘어갔다.

지난달, 키움에서 은퇴한 이택근이 새로운 징계 논의를 촉발시켰다. KBO에 ‘키움 구단과 관계자에 관한 품위손상징계요구서’를 제출했다. 그는 “키움 구단은 내게 ‘허 의장이 공을 던지는 영상을 촬영한 팬을 색출해 언론사 제보 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키움 구단은 폐쇄회로(CC) TV로 팬을 사찰했을 뿐만 아니라 선수인 내게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상급기관인 KBO의 대응은 미적지근했다. 22일 상벌위를 열었지만, 최종 결정은 엿새가 지난 28일에야 내려졌다. KBO는 “이사회 의장의 신분으로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처신을 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KBO 리그의 가치를 훼손했다. 야구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및 부칙 제1조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의거해 직무 정지 2개월의 제재를 부과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발표했다. 이제껏 키움에 내려진 징계 중 그나마 수위가 가장 높다.

당초 법률 전문가가 포함된 상벌위는 ‘엄중경고’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법리적인 해석과 KBO 규약’에 따른 징계를 내리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임기 종료를 앞둔 정운찬 KBO 총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장고 끝에 구단 뿐 아니라 허 의장도 징계했다.

규칙은 구성원끼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이번 징계는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구단 관계자의 배팅볼을 제재할 근거를 찾긴 어렵다. 히어로즈와 허 의장 측이 추후 소송으로 맞선대도 이상할 게 없다. 어쩌면 KBO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벌’은 불가피하다. 히어로즈는 이미 여러 번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감동을 줘야 할 프로야구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오히려 더 강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야구팬이 많은 듯하다. 다행히 징계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CCTV를 통해 팬을 감시한 혐의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필요해 결정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다음 징계가 이뤄진다면, 적어도 직무정지 2개월보다는 무거워야 한다. 모두가 사랑하는 야구를 ‘그깟 공놀이’로 여긴 잘못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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