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벤처 투자에 분사 추진...에너지 전환 가속에 살길찾는 정유사

중앙일보

입력

에쓰오일 공장 전경. 에쓰오일은 벤처기업 지분 투자를 최근 늘리고 있다. 중앙포토

에쓰오일 공장 전경. 에쓰오일은 벤처기업 지분 투자를 최근 늘리고 있다. 중앙포토

국내 정유 4사가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벤처기업 지분 투자를 늘리고 자회사 기업공개(IPO)도 서두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고, 에너지 전환에도 가속도가 붙으면서 신사업 진출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에쓰오일(S-Oil)은 벤처기업 범준이엔씨 지분 일부를 사들였다고 28일 밝혔다. 범준이엔씨는 정유공장 부산물인 유황을 연료로 콘크리트용 개질 유황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번 지분 매입은 에쓰오일의 5번째 벤처 투자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인공지능(AI) 산업설비 예방진단 솔루션 기술을 보유한 원프레딕트를 시작으로 전기차 배터리와 웨어러블 소재 등으로 벤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이날 “생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와 배터리, 소재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탄소 감축 목표 달성 등 지속성장을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벤처 투자금액 규모를 따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업당 10억~20억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의 울산 CLX 전경.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소재 자회사 기업공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울산 CLX 전경.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소재 자회사 기업공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정유사가 거느린 자회사에 대한 기업공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의 소재 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지난 18일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KOSPI)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의 소재 사업 부문이 물적분할해 만든 기업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과 폴더블 스마트폰 등의 디스플레이에 적용하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을 주로 생산한다. 이 회사는 올해 중국 창저우에 신공장을 가동하면서 분리막 생산능력을 연간 8억7000만㎡로 늘렸다. 중국과 폴란드에 짓고 있는 공장이 순차적으로 가동하면 연간 분리막 생산능력이 오는 2023년 말에는 18억7000만㎡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기업 공개를 위한 실질적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예비심사가 끝나면 실질심사, 수요예측 등 절차를 이어가 내년 중 상장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GS칼텍스의 에너지 모빌리티 융복합스테이션. GS칼텍스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 GS칼텍스

GS칼텍스의 에너지 모빌리티 융복합스테이션. GS칼텍스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 GS칼텍스

GS칼텍스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친환경 소재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9년을 투자해 지난해 개발에 성공한 2,3-부탄다이올이 이 회사가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친환경 소재다. 2,3-부탄다이올은 자연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천연물질로 보습 및 항염 효과가 뛰어나 마스크팩 등에 쓰인다. GS칼텍스는 미생물을 사용해 고품질 2,3-부탄다이올을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바이오 공정을 통해 생산하기 때문에 화학 공정 대비 온실가스 발생량을 4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의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VLSFO 공정 전경. 사진 현대오일뱅크

충남 서산의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VLSFO 공정 전경. 사진 현대오일뱅크

올해 초 SK네트웍스의 주유소 사업을 인수한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공간을 활용한 플랫폼 비즈니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으로 속도를 내는 수소충전소 신설도 검토 대상이다. 이와 별도로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충남 서산시 대산 첨단화학단지에 정유 부산물을 활용해 나프타 등을 생산하는 설비 투자도 논의하고 있다.

석유제품이 미래 담보 못 해 

정유 4사가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는 건 석유제품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정유 4사의 누적 적자는 4조8000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석유제품 소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 생존 키워드가 된 것도 국내 정유사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ESG 경영은 산업 현장에 속속 적용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가 지난 10월 친환경 용기로 제작한 신제품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신제품 용기는 폴리에틸렌 성분의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정유사 내부도 신사업 지원 줄이어" 

이와 별도로 정부가 치고 나간 '2050년 탄소중립'도 정유사에 큰 부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회”라며 '2050 탄소중립' 실현에 정부의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배출량-흡수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유 산업은 철강과 함께 온실가스 다 배출 산업으로 꼽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내부에서도 신사업 부문에서 일하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나 손을 들어도 못 가는 수준”이라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산업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