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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화법, 총리의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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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24일 도쿄의 한 대형 호텔에서 열린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강연회.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환자가 하루 3000명을 웃도는 와중에도 청중 500여명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청중들의 신경은 온통 총리의 육성에 집중됐다. 출범 100일 만에 내각 지지율이 반 토막이 난 불안정한 상황에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총리의 강연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키타 시골 출신”이라는 점을 어필하며, 간판 정책인 ‘휴대전화 요금 인하’의 요금제 금액까지 깨알같이 소개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팬데믹 장기화의 불안 속에서 리더에게 기대했던 카리스마는 없었다. 강연은 매우 세세했지만 공허함마저 남겼다. 아베 전 총리가 헌법 개정, 국가관을 강조한 나머지 민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면 스가 총리는 그 반대였다.

스가 총리의 답변 방식은 단답형이다. 정리된 답변을 미리 머릿속에 넣어놓고, 질문이 나오면 그중에서 꺼내 읊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를 거듭해도 답변이 비슷하고, 돌발적인 질문엔 미숙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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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의 메시지 전달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그가 총리직에 오른 초기부터 있었다. 관방장관 시절 기자들은 그의 답변 능력을 상당히 우려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답변서를 술술 읽는 스가는 ‘철벽 관방장관’으로 비쳤지만, 카메라가 꺼진 뒤 ‘백 브리핑’에선 ‘이, 그, 저’ 같은 지시 대명사를 많이 쓰고 설명이 명확하지 않아, 기자들끼리 해석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와 미디어』, 아키야마 신이치)

실제 야당 의원과 시나리오 없는 대련을 치러야 하는 총리직은 관방장관 자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말실수도 여러 번 나왔다.

국회에서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대사인 “전집중의 호흡으로 임하고 있다”를 인용해 답했을 땐 분위기가 싸했다. 코로나19의 대응을 묻는 심각한 상황에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위기 상황에서 총리의 리더십엔 의문부호가 앞서는 이유다.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스가는 최근엔 되도록 답변지를 보지 않고 답을 하거나, 퇴근길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도 마다치 않는 편이다.

청와대의 리더십은 어떤가.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늦었다는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메시지는 설득보다는 ‘폭탄 떠넘기기’에 급급한 느낌이다. 진솔하게 국민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1도 보이지 않는다.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국민에게 성실하게 설명하려 노력하는 쪽에 차라리 점수를 주고 싶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