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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염색에 진한 화장 했잖아" 미성년 성폭력범 황당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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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시술을 배우던 미성년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30대 강사 측이 “피해자가 머리를 금발로 염색도 하고 화장도 진하게 하는 등 멋을 부리면서 잘 지낸 점”을 무죄 근거의 하나로 들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5년 전 문신 시술을 교육받던 당시 10대 청소년을 성폭행한 강사 A씨(30)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또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8년간 취업제한과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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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에 따르면 문신시술소를 운영하는 A씨는 2015년 5~7월 자신에게서 문신 시술을 배우던 B양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10대였던 B양은 사건 직후 A씨를 고소하지 않았다. 그는 시술소에서 문신을 배울 수 있도록 해준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과 부모가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성폭력 피해를 잊으려고 했지만 우울감과 자괴감만 깊어갔고, 2018년 아버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B양 아버지는 딸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피고인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을 하면 고소하지 않을 마음으로 A씨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자 그를 고소했다.

A씨와 변호인은 성폭력 행사를 부인하면 B양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문신 시술소 사람들과 잘 지낸 점 ▶피해자가 서울에 간 이후에도 제주에서 피고인을 만나 술을 마신 점 ▶피해자가 머리를 금발로 염색도 하고 화장도 진하게 하는 등 멋을 부리면서 잘 지낸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주장은 결국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의 부족을 지적하는 것”이라며 “범죄를 경험한 직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피해자가 선택하는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성적 정체성 및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숙한 청소년이었고, 자신을 위하여 이 사건 시술소에 등록하여 문신을 배우게 해 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물증이 없어서 처벌이 안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등에 의해 고소하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또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문병주ㆍ최충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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