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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관상 페스티벌 열겠다” 공연계 기발한 아이디어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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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18면

송제용 대표가 국내 최초로 기획한 ‘100인 비대면 합창’은 실시간 접속자 1만9637명을 모았다. 김현동 기자

송제용 대표가 국내 최초로 기획한 ‘100인 비대면 합창’은 실시간 접속자 1만9637명을 모았다. 김현동 기자

“내년엔 경의선 철길에서 사주관상 페스티벌을 열겁니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 #‘100인 비대면 합창’ 인기몰이 #디지털 공연 트렌드 이끌어 #“모든 행사엔 펀(fun)이 있어야”

마포문화재단 송제용(55) 대표의 말이다. ‘사주관상’이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페스티벌이 될 수 있다니 놀랍지만, 코로나19 비상시국을 기발한 발상으로 돌파해 온 마포문화재단의 지난 행보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송 대표는 지난 3월 취임과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장벽을 만났다. 하지만 예정된 공연을 발 빠르게 온라인 생중계로 전환하고, 서울 공연장 최초로 QR코드 입장 시스템을 도입하며 ‘벽 뚫기’에 나섰다. 특히 매년 가을 치러온 클래식 축제를 전면 ‘디지털 콘택트’로 전환, 메인 콘서트에서 최초로 시도한 ‘100인 비대면 합창’은 실시간 접속자 국내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제가 지금도 신문 7~8개를 보는데, 궁금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잘 메모해 둡니다. 10년 전쯤 에릭 휘테커라는 작곡가가 ‘가상 합창제’란 걸 열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왠 또라이냐’ 싶었으면서도 메모를 남겨 놨는데, 이번에 떠올라 밀어붙였죠. 솔직히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지난 12일엔 주민 커뮤니티 예술 사업까지 온라인 페스티벌을 열어 어르신 관객 500명을 줌(ZOOM) 화면 앞으로 끌어모았다. 21~23일에는 19개 인디 밴드가 3일간 온라인 릴레이 공연을 펼치는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로 올해를 마감한다. 명실공히 2020년 공연계 디지털 트렌드를 견인해온 셈이다.

“젊은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도 휴대폰을 보잖아요. 팬데믹에 영상화의 당위성도 성립되고, 젊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모티브도 됐죠. 어르신들도 못지 않습니다. 시니어 중심인 커뮤니티 사업 자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사전 교육으로 안내를 잘하니 무리가 없더군요. 코로나로 단절된 상태가 되니 그분들이 더욱 열의를 보이셔서 적당히 할 수가 없었죠.”

이번 주 촬영을 마친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승환·이날치·크라잉넛 등 라인업이 화려하다. 이 공연을 촬영한 서울독립음악창작소는 최근 재단이 운영권을 따 신인 뮤지션 육성의 장으로 활용에 나선 참이다. “꿈은 있는데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뮤지션들에게 멋진 선배들과 시작할 기회를 주는 거죠. 뮤지션들 도와주는 게 음악 창작소의 비전이거든요. 예산이 적어서 내년부턴 커머스 사업도 해보려고요. 팬데믹 상황에 맞게 친환경상품을 만들고 판매해,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거죠.”

30년 가까이 언론사에서 문화 사업을 전담해온 기획자답게 그의 머릿속에는 대중의 취향을 저격할만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업계에서 소문난 아이디어맨으로, 남다른 ‘촉’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뜨는 AR(증강현실) 전시를 이미 8년 전에 열었고, 2015년 전국적 인기를 끈 세계 최초의 수중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 전’도 그의 기획이었다. 할러웨이는 당시 자국인 바레인에서도 개인전을 해본 적 없는 무명작가라 모두 반대했지만, 그는 성공을 확신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당시만 해도 ‘만들어진’ 사진이 드물 땐 데, 수중에서 패셔너블하게 연출한 사진들이 흥미롭더군요. 제가 또 궁금한 건 못 참아요. 당장 메일부터 보냈죠.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더군요. 주변에서 하도 반대를 해서 ‘잘 안되면 퇴사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죠. 막상 개막일이 다가오니 불안하더군요.(웃음) 스트레스로 4.5kg나 빠질 정도였는데, 결국 개막일에 울었어요. 공짜 전시만 하던  예술의전당 작은 전시실을 겨우 빌렸는데, 첫날 관람객 행렬이 바깥까지 나갔거든요. 두 달 내내 꽉 차고, 1년 동안 전국 투어를 돌며 10억 이상 순수익을 올렸죠.”

하지만 불도저 스타일인 그도 코로나19 앞에 무릎 꿇은 기획이 없지 않다. 홍대 사거리를 막고 하려던 제야의 밤 행사다. “보통 연말에 홍대 클럽에 만 명 넘게 모이니까요. ‘제야의 종소리’와 비교도 안 되게 재밌는 카운트다운 행사를 하고 싶었는데…. 내년엔 꼭 할 겁니다. 6월쯤이면 코로나가 절반은 종식된다는 전제하에 전 세대가 즐길 만한 축제도 열려고요. 마포를 연구해 보니 우리나라 모든 술이 시작된 곳이고, 마포 나루에서는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사주도 봐주고 취업·창업 컨설팅도 해줬더군요. 한국인 치고 점 보는 것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술과 연결해서 상권도 살리고, 창업·취업 컨퍼런스까지 함께 열면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의미 있는 축제가 될 겁니다. 모든 행사에는 ‘펀(fun)’이 있어야 하니까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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