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그래서 복수는 아름다웠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아직도 지갑에 갖고 계시는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그 유서.

노무현 서거서 시작된 복수극 #끝내 비루한 드라마로 마무리 #‘그들과 다를 기회’ 스스로 포기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었다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2018년 1월 한 방송에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지갑에 갖고 다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병원으로 옮긴 직후, 비서들이 PC에 남겨진 유서를 보고 처음 출력해 문 대통령에게 갖다 줬다. 문 대통령은 이 유서를 지갑에 갖고 다니며 복수를 다짐했다. 단, 앙갚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복수를. 양 전 비서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름다운 복수는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약속대로 문 정부의 복수는 아름다웠나. 문재인은 이명박·박근혜와 달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우악스러웠던 적폐 청산 과정을 새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복수의 최종 타깃인 검찰을 손보는 과정만 봐도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어불성설이다. 아름답기는커녕 폭력적이었다. 야당의 비토권 보장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고,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징계를 강행했다. 구성원 99%의 반대를 무시한 채 그 수장을 심판대에 올린 것은 검찰 조직에 대한 증오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징계위 결정으로 복수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행동대장 격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임무 완수”를 외치며 하차를 선언했다. 무대 뒤에 있던 총연출 격인 대통령이 “그가 없었다면 검찰 개혁은 불가능했다”고 치켜세우며 앞으로 나섰다. 극적 효과를 노린 조폭 드라마를 닮았다.

폭력적이면서 비겁하기까지 했다. 징계위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2개월 정직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다. 판사 사찰, 정치 중립 위반, 수사·감찰 방해. 거론된 징계 사유 하나만 해도 족히 탄핵감이다. 거창한 혐의치고는 너무 싱겁다. 징계가 설득력이 없었음을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론의 역풍과 행정소송 결과까지 고려했겠지만, 무엇보다 두 달 후엔 공수처가 출범할 것이란 계산이 들어갔을 것이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검찰이 쥐고 있던 원전·울산·라임 등 권력 비리 수사를 넘겨받을 수 있다. 하나같이 정권 안위를 위협하는 수사들이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 말마따나 ‘비겁하고 무능한데 배짱도 없는’ 결정이다. 아름다운 복수 드라마가 아니라 비루한 ‘생활 드라마’에 지나지 않았다.

복수는 쾌감을 준다. 신경과학자가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의 뇌를 스캔했더니 대뇌 속 ‘줄무늬체’가 활성화하는 게 발견됐다. 니코틴·코카인·초콜릿 따위를 갈구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다. 분노는 괴롭지만, 복수는 달콤하다. 기어코 정의를 이뤘다는 만족감이 바로 복수가 주는 쾌감이다(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복수의 쾌감 속에 아름다운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은 잊어버렸다. 전 정권이 갔던 ‘낮은 길’을 되밟았다. 80% 지지율을 안고 출범했던 정권 초반이 좋은 기회였지만 복수의 열망에 불타는 맹목적 지지자의 함성에 취해 기회를 날려버렸다. 전 정권과 다른 게 있긴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때로는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협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이를 ‘정의’라고 우기지는 않았다.

윤석열 대망론을 내세운 보수 진영의 복수 열망이 들끓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현실 자체가 코미디이자 비극이다. 혹시나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또 한 번의 복수극은 필연적이다. ‘87년 헌법 체제’ 이후 그토록 빠져나오고 싶었던 5년 주기의 비극이다.

“일생에 한 번쯤/ 오래 기다리던 정의의 파도는 일어나고/ 희망과 역사가 합창한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과 통화하며 인용한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시구다. 정의의 파도는 일생에 한 번은 와야 한다. 기필코. 하지만 5년마다 정의의 파도가 일어난다면 끔찍하다. 그건 희망이 아니라 증오의 악순환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정의의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