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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죄 기준 높인 대법 판결, 조윤선 두 번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뉴스1]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뉴스1]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내놓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이번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이준영 최성보 부장판사)는 17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은 조 전 수석과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였던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판결은 그대로 유지됐다.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만은 일부 유죄가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무 권한을 남용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점이 인정돼야 한다. 2심 재판부는 지난 1월 대법이 이른바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직권남용죄에 관해 내린 판결을 인용했다. 당시 대법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한 해석의 원칙 및 최소 침해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며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높였다.

이에 따르면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기준이 달라진다. 일을 시킨 대상이 공무원인 ‘실무담당자’라면 그의 행위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해당하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의 이름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기초로 정부지원금 대상에서 배제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수석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 재판부도 이러한 판례를 그대로 따랐다. 조 전 수석을 비롯한 4명이 청와대 비서실 소속 공무원 또는 해수부 소속 공무원들에 대해 문건이나 보고서 등을 작성하게 한 혐의는 권리행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 전 수석은 같은 대법의 판결로 블랙리스트 사건은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세월호 특조위 방해 사건에서는 무죄를 선고받게 됐다.

반면 재판부는 직권을 남용한 상대방이 서로 다른 기관 소속 공무원인 경우에는 해석을 달리했다. 윤학배 전 차관이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단에 파견 명령을 받은 이들에게 내부 동향을 파악해 일일 상황보고 문서를 작성하게 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위원회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활동을 마치게 된 건 당시 청와대와 해수부의 각종 방해나 비협조에 따른 것이지 윤 전 차관의 행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후 이들은 세월호 유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병기 전 실장은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고, 김영석 전 장관은 “유가족에게 영원히 빚진 마음이며 끝까지 그분들과 마음을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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