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음식 새" 연예인 교정 유명 치과 파산…2000명 날벼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년 전 환자들에게 100억 원이 넘는 치료비를 입금받고 제대로 진료하지 않아 ‘먹튀 논란’을 일으킨 투명 치과 원장 강모(54)씨가 결국 파산했다. 강씨에게 치료비를 입금한 피해자 중 일부는 3년간 민·형사상 소송을 벌여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파산하면 결국 돈을 안 갚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며 "법원에 이의신청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2018년 6월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중앙포토]

2018년 6월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중앙포토]

'압구정 연예인 교정'으로 유명세

16일 법원에 따르면 강씨는 2013년부터 2018년 5월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연예인 투명교정'으로 유명한 A치과를 운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대·30대·군인 등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명 치과' 마케팅을 벌였다. 2017년 360만원을 결제한 오모(39)씨는 "당시 페이스북에 자주 뜨던 '연예인 투명 치과' 광고를 봤다"며 "다른 곳에서 안 된다고 했던 투명교정이 여기서는 반값에 된다고 해 결제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당시 강씨는 환자 2000여명에게 124억원의 교정 시술비를 받았다.

하지만 2018년 5월 갑자기 강씨의 치과는 "영업이 어려워졌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당시 대한치과교정학회가 투명교정 할인 행태를 '불법 허위 과장광고'로 규정해 치과의사들에게 회원자격 정지를 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한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은 강씨의 치과가 사용하는 교정장치는 미국에서 인증된 것이 아닌 페트병을 만드는 플라스틱으로 제작했다고 보도했다. 학회가 경고하자 강씨의 치과 소속 의사 14명이 퇴사했고, 나머지 의료진도 업무를 거부했다.

서울회생법원 [사진 홈페이지 캡처]

서울회생법원 [사진 홈페이지 캡처]

"발음 무너지고 입에서 음식 샜다"

투명치과 시술이 중단된 후 가장 큰 문제는 환자들이 겪은 부작용이다. 2017년 강씨의 치과에서 교정 시술을 시작한 김모(29)씨는 "치아교정은 중간에 멈추면 안 하느니만 못한 시술"이라며 "갑자기 영업을 안 한다고 했을 당시 발음이 무너지고 음식이 입에서 흘러내렸다"고 전했다. 이씨는 "쌀을 못 씹어서 맨날 죽만 드신 분도 있다"며 "사실상 부작용 때문에 싸우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환자 2000여명의 고소가 쏟아지자 서울 강남경찰서는 같은해 7월 강씨를 사기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경찰의 감정 의뢰를 받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통상적인 치과적 관점에서 벗어난 진료행위"라고 분석했다. 투명 치과가 쓰는 장비 효과를 과장하여 환자를 유치해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설명이었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사기 등 혐의로 강씨를 재판에 넘겼다.

"3년 싸웠는데…" 법원 파산 선고

지난 14일 서울회생법원은 강씨에 대해 간이파산을 선고했다. 회생법원은 "채무자가 향후 면책을 허가받게 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며 "30일 내 이의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강씨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 이모씨는 “법원이 파산을 받아들이면 돈을 못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며 “그동안 싸워왔는데 너무 허탈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대한치과교정학회가 A치과 소속 치과의사들에게 보낸 메시지. 강씨는 이 메시지 때문에 소속 의사들이 퇴사했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치과업무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사진 강씨 제공]

2018년 5월 대한치과교정학회가 A치과 소속 치과의사들에게 보낸 메시지. 강씨는 이 메시지 때문에 소속 의사들이 퇴사했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치과업무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사진 강씨 제공]

전문가들은 "파산한 강씨라도 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빚을 갚아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진승한 변호사(삼성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채무자가 돈이 없는 경우 채권자 구제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돈을 모은 사유가 합리적 영업이 아니라 기망을 통한 사기 행위로 인정된다면 채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 "남은 내 재산 균등 분배될 것"

이에 대해 강씨는 "파산선고가 되면 내 남은 재산(약 70억원)이 은행과 환자 등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고 들어 파산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일을 하며 돈을 갚아나가겠다고 회생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치과를 새로 열거나 취직을 할 때마다 환자들이 '무당 치과'라며 영업을 못하게 해 돈을 벌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금전적 배상 말고 진료를 받고 싶어하시는 분도 계셨다"며 "이미 2000명 정도 진료를 마쳐드렸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낸 교정시술비용 124억원의 행방을 묻자 강씨는 "직원들 월급과 새 병원을 짓는 재투자금으로 사용했다"며 "개인적으로 숨기거나 다른 곳에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투명교정기기는 미국에서 과학적 근거를 확인한 뒤 들여온 것이며, 환자 시술을 다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뒤 돈을 받은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22일 사기 등 혐의를 받는 강씨에 대해 4번째 공판을 열 예정이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