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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중심은 음식 자긍심 가지세요"

중앙일보

입력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다른 요리사도 아니고 한식 요리사다. 자신이 먹고 있는 한국 음식이 자랑스러워서란다. 직접 만들어 보면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도 봤다고 한다.

몸은 비록 주방의 좁은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김호영과 이혜연이 바로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 한국 음식을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아이들이다.

둘 다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경기도 시흥) 3학년생이다. 이들이 지난 20일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로 꼽히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의 앙드레 쿠앵트로(55) 회장을 만났다.

쿠앵트로 회장은 지난해 숙명여자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문을 연 한국 분교(分校)와 관련해 방한했다. 1주일의 빠듯한 일정을 쪼개 호영이와 혜연이에게 요리사의 세상에 대해 말해주며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어줬다.

▶김호영(김)=요리사란 직업의 미래는 어떤가요.

▶쿠앵트로(쿠)=일을 하거나 돈을 버는 직업으로 따진다면 요리사는 훌륭한 직업입니다. 세계적으로 숫자가 부족한 상태라 전문 요리사가 되면 어디서든지 일할 곳은 많습니다.

요즘엔 특히 요리하는 사람들의 일이 주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파티 플래너.요리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리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혜연(이)=우리나라에선 요리사를 약간 낮추어보는 분위기가 있는데 프랑스는 어떤가요.

▶쿠=인기 연예인이나 예술가로 대접받는 스타급 요리사도 많아요. 옛날 왕궁에서도 요리사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거든요. 한국의 유능한 학생들이 코르동 블루를 찾는 걸 보니 한국도 앞으로 요리사가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최근 프랑스에서 나오는 레스토랑 평가책인 '미슐랭 가이드'에서 등급이 떨어졌다고 자살한 유명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쿠=루아조의 자살은 단지 레스토랑 등급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은 아닐 겁니다. 재정적인 문제와 다른 요인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최고의 요리사일 뿐 아니라 레스토랑도 여러 곳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파리 레스토랑 중에 유일한 상장(上場) 회사이기 때문에 등급 하락은 주식 가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물론 요리사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도 많이 입었을 겁니다.

▶이=프랑스 레스토랑 업계의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요.

▶쿠=요즘 파리에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의 절반 가량은 외국 레스토랑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직접 와서 자신의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는 것이죠.

이제 서로 문화를 개방하면서 아시아 사람들은 빵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유럽 사람들은 쌀 문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문화의 최첨병입니다. 국제화.개방화 물결 속에 요리사의 역할은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김=최고의 요리사란 어떤 요리사를 말하나요.

▶쿠=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여야겠지요. 최고 요리사란 어떤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요리 분야에서 각 지방 또는 분야별로 뛰어난 조리장들이 있으니까요.

▶이=그런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쿠=전문 교육을 받은 후에 훌륭한 조리장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견습생.파트장.부 주방장.총 주방장을 거쳐야 하지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려면 최소한 15년 정도 요리에 매진해야겠지요.

▶이=프랑스 음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쿠=지형적으로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탈리아.스페인.독일.벨기에 등 많은 나라의 식문화가 모이는 위치지요. 또 지형과 기후의 특색으로 식자재가 풍부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요리의 기법을 문서화한 것이 프랑스 음식이 세계적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봅니다. 5백여년 전부터 기록해 왔으므로 프랑스 요리 하면 서양 요리의 기본이라고 할 정도지요.

문자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왕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시피(Recipe) 중엔 귀족들의 이름이 붙은 것도 있지요.

▶김=한국 음식을 맛본 느낌을 이야기해주세요.

▶쿠=한국 음식은 중국.일본 음식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독자적입니다. 특히 김치는 건강식이지만 저는 워낙 매워서 '약'처럼 먹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프랑스 음식을 더 좋아합니다.

▶김=한국 음식의 세계화는 가능성이 있나요.

▶쿠=물론이지요. 세계가 개방화되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부상함에 따라 미래가 더욱 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식은 문화의 일부이므로 한국문화가 국제사회에 알려질수록 한국 음식에 관한 관심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코르동 블루가 1백 여년간 세계적인 요리전문학교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쿠=첫째로 훌륭한 요리 교사들을 꼽을 수 있고, 둘째로는 좋은 설비, 셋째로는 어떤 요리에도 적용될 수 있는 테크닉.절차.방법들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단순한 요리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독창성.예술성을 갖춘 전문인을 기르는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이=프랑스 본원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적잖은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쿠=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 프랑스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세계 12개국 22개 분원의 교육 내용이 똑같거든요. 한국에선 우선 숙명여대의 코르동 블루에서 중급까지 마치고,마지막 상급 단계는 프랑스 본원이나 비용이 적게 드는 다른 나라 코르동 블루에서 마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 나라마다의 문화적인 접촉도 중요하니까요.

▶김.이=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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