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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서 왔는데 먹이 없어 탈진…독수리 월동지 ‘비상’

중앙일보

입력

경기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의 과거 모습. 중앙포토

경기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의 과거 모습. 중앙포토

군사분계선과 3㎞ 떨어진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수리 월동지다. 이곳에서는 이번 겨울 들어서 독수리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먹이 주기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이곳에서는 과거 정기적인 먹이 주기가 이뤄질 당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수리 700∼1000마리가 몽골에서 날아와 겨울을 났다. 장단반도는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 농사짓는 사람 등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군 작전지역이어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경기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의 과거 모습. 한국조류보호협회

경기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의 과거 모습. 한국조류보호협회

현재 월동지에서 흩어진 독수리 100여 마리가 민통선 들판과 민통선 바깥 문산 지역 한강하구 등지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달 말엔 먹이 부족으로 탈진해 나무에 걸려 있던 독수리 1마리가 파주 민통선 바깥인 조리읍 오산리에서 발견돼 구조되기도 했다. 조류보호협회가 탈진 또는 부상, 독극물 중독 등으로 쓰러진 독수리를 구조해 보호 중인 민통선 바깥 적성면 마지리 조류방사장에도 하루 평균 5∼6마리의 독수리가 먹잇감을 찾아 날아들고 있다. 이곳과 월동지의 거리는 25㎞다.

독수리, 민통선 안팎으로 흩어져  

파주 민통선 내 해마루촌 주민 조봉연씨는 “월동지 먹이 주기 중단으로 사방으로 흩어진 독수리가 파주시 민통선 안팎 여러 곳에서 보인다”며 “지난해 겨울 야생 멧돼지 폐사체 수거 작업 때 독수리 무리가 하늘을 맴도는 곳을 가보면 어김없이 야생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을 볼 때 독수리가 ASF에 감염돼 죽은 야생 멧돼지를 먹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 경우 전염병 전파의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라며 “월동지 내 먹이 주기를 통해 독수리가 민통선 내에 머물도록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독수리 도래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독수리 도래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독수리 탈진으로 떼죽음 우려”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은 “ASF와 AI로 인해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가 중단되면서 먹이 부족으로 인한 탈진으로 독수리의 떼죽음이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민통선 내 월동지에서의 먹이 주기가 중단되면 독수리들이 먹이를 찾아 민통선을 벗어나 전국의 양돈, 양계 농장 주변으로 날아들면서 오히려 질병을 전파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독수리=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서식한다. 동물의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수릿과 조류 중 덩치가 큰 맹금류를 흔히 ‘독수리’로 통칭하지만, 엄밀하게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가령 ‘미국 독수리’는 흰머리수리를 말한다. 수릿과 조류 중 독수리·검독수리·참수리·흰꼬리수리 등 4종류가 천연기념물(제243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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