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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테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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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 서사를 작동시키는 원칙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인버전’이라는 시간 여행 기술이다. 대부분의 시간 여행 영화가 순간 이동 방식으로 과거나 미래로 간다면, ‘테넷’의 인버전은 다르다. 만약 24시간 전으로 가고 싶다면 시간을 거스르는 24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 과정을 보여주는 놀런의 방식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탄환의 역행부터 시작해 ‘테넷’은 인버전을 신기한 비주얼로 시각화한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공들인 편집으로 드러낸 ‘메멘토’(2000)부터 ‘인셉션’(2010)의 킥이나 ‘인터스텔라’(2014)의 블랙홀까지 시간의 특이점을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이미지로 제시하는 건 놀런 감독의 오랜 장기였다. ‘테넷’의 인버전은 그 정점이며, 특히 카 체이싱 액션 신은 인상적이다.

영화 ‘테넷’

영화 ‘테넷’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닐(로버트 패틴슨)이 탄 자동차를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차가 추격한다. 인버전 상태이기에 후진 주행 중이다. 이때 주인공 앞에 전복된 차 한 대가 등장하는데 갑자기 사고 전 상태로 되돌아가 도로를 주행한다. 그 차 역시 인버전 상태이며, 주인공 자신이 탄 차이다. 시간의 순행과 역행이 결합한 기묘한 이 장면은, 만약 시간이 뒤로 흐를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한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장르적 스펙터클의 세계. 이건 놀런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황홀경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