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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수렁에 빠진 그대 '의처·의부증'

중앙일보

입력

질투심에 눈이 멀어 죄없는 아내를 살해한 베니스공화국의 오셀로 장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색채가 짙다고 알려진 '오셀로'에서 보듯 상대방에 대한 부당한 의심은 비극적 종말을 초래한다.

의학적으로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대표적 난치성 정신질환인 망상 장애(편집증)의 가장 흔한 형태. 피해자는 괴롭지만 주변에서는 눈치채기조차 어려운 망상장애를 알아본다.

한때는 주변에서 금실 좋은 부부로 알려졌던 L씨(35). 부인의 의부증은 어느날 회식에서 돌아온 그의 옷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난다는 식으로 첫 발병의 모습을 드러냈다.

옆자리에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다는 L씨의 설명은 변명으로 들렸고,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확신하에 다음날부터 남편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전화로 남편의 회사 출근을 확인했고,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기다려 함께 귀가했다.야근을 하면 '바람 피우고 있다'며 남편을 닦달했다. L씨 부인은 전형적인 질투형 망상장애인 의부증 환자다.

망상(妄想)이란 논리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게 특징. 망상장애뿐아니라 정신분열증.조울증 등 여러가지 정신질환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정신분열병 환자는 '국정원에서 우리 가족을 감시하고 죽이려 한다'는 식의 엉뚱하고 비논리적인 망상을 보인다. 하지만 망상장애 환자의 망상은 논리적이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남이 들으면 누구나 믿을 정도며, 망상 이외엔 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망상장애 환자가 소송을 의뢰하기도 하는데 변호사도 그의 말을 신뢰할 정도라는 것.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망상장애 발병 연령은 30~40대며, 유병률은 10만명당 1~3명. 대부분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원인은 잘 모르며 유전적 요인, 믿음을 상실한 성장기 등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증상은 망상의 유형에 따라 다른데 의부증.의처증으로 대변되는 질투형이 가장 많다.

발병은 상대방의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는 등 사소한 일로 시작하며, 환자는 이를 증거삼아 자신의 망상을 정당화시킨다. 또 환자는 배우자에 대한 상상 속 부정을 막으려고 상대방의 외출을 막고 뒷조사를 한다.

이런 증상은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사망한 후에 겨우 해소될 정도로 지속된다.

망상장애 진단은 개인적인 내용의 논리적.체계적 망상이 최소한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판정한다. 물론 환자의 기분과 상관없이 지속돼야 하며 정신분열병.뇌질환.약물 중독 등 다른 질환이 없어야 한다.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환자 자신이 망상에 대한 확신 때문에 병원을 거의 찾지 않고, 쉽게 치료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성균관의대 정신과 홍경수 교수는 "망상장애는 약물치료가 가능한 정신분열은 물론 난치병으로 알려진 치매보다 더 치료가 힘든 정신질환"이라고 강조한다.

L씨 부인처럼 병원에 온 경우엔 약물치료와 상담으로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 실제 L씨 부인은 1년간 치료 후 현재 '이전에 바람을 피웠지만 지금은 안피운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남편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다.

과거 의심한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확신하는 것이다. 망상장애 환자들은 발병 전에도 의심이 지나친 성향이 있다.

예컨대 연애시절 애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꼬치꼬치 따져 묻고 의심이 많다면 결혼 후 의부.의처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홍교수는 "일단 망상장애가 의심되면 피해 당사자는 가족들에게 환자 상황을 적극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치료에 협조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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