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여정한테 대놓고 찍힌 강경화…文정부 최장수 장관 위기 맞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IISS 유튜브 캡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IISS 유튜브 캡처]

북한의 코로나19 확진자 0 주장이 "좀 이상하다"고 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주제넘은 망언" 비난에 위기를 맞고 있다.

5일 IISS 패널 답변 "北 코로나 0 못 믿겠다"에 #김여정, 오빠 연설 "확진·사망 없다" 반박 간주 #영문 성명선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할 것"

북한에서 대남·대미 관계를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4문장' 강경화 장관 저격 담화로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 노력이 한꺼번에 위기에 처한 셈이다.

김 부부장은 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강경화 장관을 콕 집어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보복을 예고했다.

김 부부장 담화는 북한 인권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대남관계 중단을 경고한 6월 4일과 문재인 대통령의 6·15 20주년 연설을 두고 "철면피"라고 비난한 같은 달 17일 담화 이후 6개월 만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국제인권단체들과 야당의 '김여정 하명법' 비판을 무릅쓰고 대북전단금지법을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지만, 다른 곳에서 예기치 않은 폭탄이 터진 셈이다.

문제가 된 강경화 장관의 북한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대한 발언은 중동 순방 중인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 바레인 '마나마 대화'에서 IISS측 패널의 남북 간 코로나 협력 상황을 묻는 말의 답변에서 나온 것이다.

강 장관은 당시 "북한이 우리 방역 지원 제안에 호응을 잘 하지 않고 있다"라며 "코로나19 도전이 사실상 '북한을 보다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더 폐쇄적이 되고, 코로나19 대응에 관해선 거의 토론 없이 하향식(톱다운)으로 결정 과정을 보여준다"며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데 나는 믿기 어렵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확진자가 전혀 없다는 질병 통제에 매우 강도 높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좀 이상한 상황(a bit of an odd situation)"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환영식 뒤 양측 수행원들과 기념촬영 모습. 문 대통령 뒷줄 왼쪽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앞줄 맨 오른쪽 김여정 제1부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환영식 뒤 양측 수행원들과 기념촬영 모습. 문 대통령 뒷줄 왼쪽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앞줄 맨 오른쪽 김여정 제1부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 장관이 마지막 발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10 노동당 창건 75주년 연설에서 "북한에는 코로나19 확진자나 사망자가 없다"고 한 발언을 믿기 어렵다고 한 걸 문제 삼은 것이다. 강 장관의 발언은 당시 기조연설엔 포함된 공식 발언이 아니라 패널 질문답변에서 한 개인 논평이었지만 김 부부장이 이를 정조준한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강 장관의 답변은 당시 청중인 국제전략연구소 전문가를 상대로 서방 청중의 인식에 기초한 발언이지만 북한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최고 존엄이 이미 전혀 없다고 북한 인민들에 선언한 코로나 방역 상황을 남한 외교장관이 정면 도전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박사는 "미국의 정권 교체에 맞물려 내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때까지 남북대화 재개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마침 이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의 고별 방한을 시작한 날 미국이 북한의 석탄 밀수출에 추가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외교 소식통은 "강경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를 포함한 4개 부처 개각에서 빠져 현 정부 최장수 장관이 됐지만 예기치 않게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외교장관 개인을 공격하며 영문 성명에서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pay dearly for it)'이라고 경고한 건 우려스럽지만 남북연락사무소 폐쇄와 군사합의 파기 등 구체적인 보복조치를 거론한 지난 6월 담화에 비해 수위는 낮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동 순방 이후 귀국해 공관에 머물고 있는 강 장관은 김 부부장 담화에 관해 직접 반응을 내지 않았다. 외교부는 "장관은 북한의 국제적 방역협력 필요성 등을 언급한 것"이라고만 밝혔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