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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방한날 '175일 침묵' 깼다, 강경화 저격한 김여정 속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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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맹비난하며 대남공세를 재개했다. 175일 만의 '등판'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IISS 유튜브 캡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IISS 유튜브 캡처]

북한 매체들이 9일 공개한 8일 자 담화에서 김여정은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강 장관이)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도 했다.

강 장관이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서 북한의 코로나 19 대응과 관련한 언급을 문제 삼은 것이다. 강 장관은 당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코로나19)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지난 3월 청와대를 향해 “저능하다”라고 비하한 데 이어, 지난 6월엔 4차례의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 파국을 언급했다. 이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 행동 예고로 위협의 수위를 확 끌어올렸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사 행동 유예 언급 이후에는 175일 동안 침묵했다. 이 때문에 이날 대남공세 재개에는 김 위원장의 의중이 담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우선 김 위원장이 직접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진두지휘하며 확진자가 없다고 한 상황에서 강경화 장관이 부정적인 발언을 한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담화가 나온 날짜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과 겹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비건 부장관은 8일 방한해 9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및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다. 또 10일엔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과의 접촉도 예정돼 있다. 김여정이 강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지만 사실상 미국을 향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권 교체기를 맞은 미국을 직접 겨냥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강 장관을 걸고 들어가며 한·미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코로나 19 방역에 명운을 걸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정책을 강 장관이 국제회의에서 언급한 것을 북한 입장에선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강 장관의 발언 나흘 뒤 담화가 나왔다는 건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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